한·일 양국 정상이 일본군 강제 동원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했지만, 미국에서는 일본의 로비가 여전하다. '위안부가 돈을 많이 받는 매춘부'였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으라고 일본 측은 캘리포니아에서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인정돼 배상 판결을 받은 '제국의 위안부' 저자는 최근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에 초청돼 '소신'을 밝혔다. 연방 의회가 이미 2007년 일본의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까지 통과시켰지만, '재팬 머니'의 힘은 대단하다. 보편적 여성 인권 문제라는 유리함이 있는데도, 잠시 한눈을 팔면 바로 일본의 칼날이 우리를 노린다.
최근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한 싱크탱크의 아시아 전문가는 저술 작업을 지원해주겠다는 한국 모 재단의 제안을 거절했다. 외국 돈을 받으면,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의회 청문회 증언 같은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다. 연방 하원은 의회에서 증언하면 반드시 외국에서 얼마나 지원금을 받았는지 1주일 내에 공개해야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호의적 전문가를 성심껏 후원하기도 어려워졌다. 최고 싱크탱크로 꼽히는 브루킹스 재단은 뉴욕타임스가 외국 정부 후원금 명세를 공개한 이후 몸을 사리고 있다. 지원한 돈과 재단이 내놓는 연구 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는지 살피는 언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돈이 있다고 피(被)수혜자를 좌지우지하기 어렵고, 자금이나 인력을 보면 일본과 우리는 천지 차이다. 대미(對美) 공공 외교 조직부터 비교가 안 된다. '재팬 파운데이션(JF)'은 사회과학 분야 인력 교류를 위한 기금만 500억엔(약 4500억원)이나 된다. 민간단체인 사사카와USA는 자체 자금이 300만달러(약 36억원), 일본에서 오는 지원금은 별도다. 우리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 예산 15억원이 전부다. 인력만 봐도 JF는 18명, 사사카와USA는 13명인데, KF는 워싱턴에 고작 2명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을 다녀가고 나서 270억원을 투입해 미국 내 주요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주니어급 연구원을 매년 250명씩 초청하기로 했다. 외무성은 이와 별도로 2억여원을 들여 학부 과정 학생까지 일본으로 불러들인다. 그나마 KF가 비(非)한국 전문가 초청 프로그램을 50~60명 규모로 확대하고 있어 다행이다. 일본을 들르는 미국 내 '차세대 안보 리더' 그룹의 한국 방문도 성사시켰다. 일단 한국을 한번 왔다 가면 대체로 친한파(親韓派)가 된다. 엉뚱한 세미나 거창하게 한 번 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의 '손님맞이'가 우호적 한국 전문가를 만드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도 의회에서 활동할 때 한국을 다녀가고는 '한국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한 건주의'다. 일부 국회의원은 '한국 돈 받았으면 한국에 유리한 발언만 해야지, 왜 안 그러느냐'고 일본의 몇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예산마저 삭감하자고 한다. 대놓고 편들면 하수(下手) 중 하수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논리로 무장한 친한파 전문가를 은근히 키우는 게 절실하다. 저쪽 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우리 편인 이른바 'X맨 육성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