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 6개 중·고교에 당구부가 개설돼 있다. 작년 12월 열린 경기 시흥시 송운중학교 당구부 창단식 장면(오른쪽). 왼쪽 사진은 2014년 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최성원 선수.

10여년 전만 해도 '어른들의 놀이'에 불과했던 당구가 연 수입 1억원 이상의 선수를 배출하는 고급 스포츠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랭킹 상위권에 한국 선수가 다수 오르면서 한국 당구 위상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TV 당구 채널이 생기는가 하면 학생이 당구장에 출입하면 정학 처분을 내렸던 중·고교에 '엘리트 당구부'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프로 당구 경기가 활성화하면서 일본어투성이 당구 용어도 우리말로 순화되고 있다. 당구인들은 "당구가 지난 10년 새 천지개벽했다"고 말한다.

당구엔 캐롬, 포켓, 스누커, 잉글리시 빌리어드 등 4개 종목이 있다. 한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종목은 캐롬의 한 종목인 '스리쿠션(3 cushion)'이다. 당구공 3개 중 하나(수구·手球)를 큐(cue)로 쳐서 나머지 둘(적구·的球)을 맞히는 동안 당구대 가장자리(쿠션)에 세 번 이상 튕겨야 하는 게임이다.

‘빌리어즈TV’에서 ‘당구 여신’이라 불리는 한주희 리포터.

한국 당구 대회에 '4대 천왕' 참가

지금까지 한국 당구의 대표적 인물은 '서울대 출신 당구 천재'로 유명했던 고(故) 이상천(1954~2004) 선수였다. 한 이닝에 3쿠션을 7개, 8개씩 친다고 해서 '칙칙폭폭'이란 별명을 얻은 이상천은 20세에 처음 당구를 치기 시작해 3개월 만에 당구 점수 300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당구 300 치려면 당구장 하나 차릴 돈은 날려야 한다"고 말하던 시절이다. 그는 1993~94년 네덜란드와 터키·벨기에에서 열린 당구월드컵에서 잇따라 우승하면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당시 이상천은 '당구 4대 천왕'으로 불리며 현 세계 랭킹 1위인 토브욘 브롬달(스웨덴)과 당시 신예로 역시 '4대 천왕' 중 한 명인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을 연달아 꺾었다. 이상천이 암으로 숨진 뒤 세계 랭킹에 오른 한국 선수는 요절한 김경률(1980~2015) 선수였다. 김경률은 2006년 UMB(세계당구연맹) 랭킹 12위에 올라 국제대회 시드권을 땄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 랭킹 20위엔 한국 선수 6명이 올라 있다.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다. 재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성원(39)을 비롯해 같은 해 이스탄불 당구월드컵에서 우승한 조재호(36), 작년 LG유플러스 마스터스대회 우승자 강동궁(36),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 경력의 김행직(24) 등이다. 한국에 이어 독일(4명)과 터키(3명)가 20위 내에 많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오랫동안 3쿠션은 배고픈 스포츠였다. 가장 권위 있다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상금이 작년 기준 4800유로(약 625만원)였다. 작년 남자 골프 브리티시오픈 우승 상금 20억원의 0.3%에 불과하다. 당구 종목 중 스누커(공 22개로 경기하는 당구)의 우승 상금이 수억원대로 가장 높다.

국내에서 통상 500만원 수준이었던 전국 대회 우승 상금은 작년 3000만원으로 뛰었다. 작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LG유플러스 마스터스대회는 우승 상금 5000만원으로 세계 3쿠션 대회 사상 최고액이었다. 이 대회에는 브롬달과 쿠드롱은 물론 '인간 줄자'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와 다니엘 산체스(스페인)까지 '4대 천왕'이 모두 참가했다. 나근주 대한당구연맹 과장은 "상금 액수를 꾸준히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당구 실업팀은 총 5개다. 중소기업 동양기계팀을 제외하면 서울시, 부산시, 인천시, 충청남도 등 지방자치단체 소속이다. 각 팀에 3쿠션 선수는 한 명씩이다. 이들의 연봉은 2000만~4000만원가량이다. 경기 출전시엔 유니폼에 스폰서 회사 로고를 붙이게 되면 해당 업체로부터 연 1000만~2000만원의 후원금을 받는다. 최근 김행직 선수는 사상 처음 대기업(LG유플러스)과 3년에 걸친 후원 계약을 맺었다. 최상위 선수의 경우 소속팀과는 별도로 특정 당구장에서 월 수백만원의 사례비를 받기도 한다. 여기에 대회 상금까지 더하면 억대 연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당구 채널 주시청자 50대 이상 남성

중·고교 때부터 당구 엘리트를 육성하는 학교들도 생겼다. 대표적 사례가 2007년 생긴 수원 매탄고 당구부다. 현재 국내 랭킹 1위인 김행직이 이 학교 출신이다. 김행직의 친동생이자 작년 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자 김태관(19)과 전국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당구 신동' 조명우(18)도 매탄고에 재학 중이다. 한춘호(49) 매탄고 당구부 코치는 "방학 때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당구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재작년 초엔 당구 경기와 당구 강습 프로그램을 주로 방영하는 '빌리어즈TV'가 개국했다. 처음엔 0%에 가까웠던 시청률이 재작년 6월 경기연맹 당구대회 중계 때 0.818%까지 찍었다. 시청자는 50대 이상 남성이 절반을 차지했다. 당구 채널은 '우라마와시'를 '바깥돌리기'로, '네지' 대신 '대회전', '쫑'이 아니라 '키스'로 당구 용어 순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경기용 당구대인 '국제식 대대(大臺)' 수요가 늘기도 했다. 대대는 동네 당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대(中臺)'보다 길이와 폭이 각각 30, 15㎝ 더 길다. 나근주 과장은 "전국 당구장 총수는 2010년 이후 하락 추세지만, 대대를 설치하는 대형 당구장 비율이 높아져 당구장 총면적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