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사우디 국채 CDS 프리미엄 6년래 최고치
사우디 중앙은행 총재 "역외시장 환투기" 지적
도이치뱅크 "사우디 달러 페그제 포기 안 할 듯"

국제 유가 급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부도리스크가 급등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채 부도 리스크가 ‘구제금융국’인 포르투갈 수준으로 치솟았다.사우디 통화인 리얄화 가치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블룸버그통신은 12일 보도했다.

데이터분석전문기관 마킷에 따르면 12일 (현지시각) 사우디 국채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은 196.01bp를 기록했다. 최근 1년 새 150% 오른 수준으로 6년 6개월만에 최고치다. CDS 프리미엄이 196bp라는 것은 1000만달러 규모의 5년 만기 사우디 국채가 부도 날 경우에 대비해 드는 보험료가 19만6000달러라는 뜻이다. 이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해당 자산의 부도 위험이 커졌단 의미다.

출처:블룸버그

블룸버그는 “사우디 국채의 CDS 프리미엄이 무디스 신용평가에서 투기등급을 받은 포르투갈 국채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포르투갈은 재정위기로 지난 2011년 78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현재 GDP대비 부채율이 129%, 실업률은 13.7%에 이른다.

이날 역외 시장에서 리얄 환율은 달러당 3.85리얄을 기록하며 약세를 지속했다. 사우디는 1986년부터 사실상 달러 페그제를 운용해왔다. 리얄화 환율이 역내 외환 시장에서 달러당 3.75리얄을 기준으로 일정 변동폭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 사우디 중앙은행 ‘환투기’ 발언 역효과

중동 언론인 사우디가젯은 “사우디 중앙은행 총재의 ‘외환시장 환투기’ 발언이 금융시장 불안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앞서 파드 알 무바라크 사우디 중앙은행 총재는 11일 성명을 통해 최근 리얄화 선물 시장이 불안정한 이유를 ‘환투기’ 탓으로 돌리며 “달러페그제 포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블룸버그는 걸프은행 외환 딜러를 인용, “국제 유가 하락세가 계속되면 사우디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이 때문에 사우디 정부가 페그제를 곧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사우디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6%인 3670억리얄(약 114조원)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사우디 정부의 순 외화자산 규모는 지난해 11월까지 최근 10개월 연속 감소했다. 2006년 이후 최장 기간 감소세다.

애버든에셋매니지먼트의 앤서니 시몬스 투자 담당은 “사우디 정부의 외환보유액이 많고 부채가 적은 것은 인정하지만 국제유가가 언제까지 떨어질 지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 정부는 재정 수입의 80%를 석유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와 같은 산유국은 유가와 환율의 상관 관계가 높아 유가가 떨어지면 통화 가치도 하락 압력을 받는다. 최근 사우디와 이란의 긴장 강화로 지정학적 우려가 커진 것도 통화 가치 하락 요인 중 하나다.

◆도이치뱅크 “사우디 페그제 포기 안할 것”

주요 금융사들 사이에선 사우디 정부가 페그제를 포기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도이치뱅크는 12일 “사우디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달러페그제를 유지하기에 충분하다”며 리얄화 약세에 베팅하는 역외 선물 투자는 피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투자자들에게 보냈다.

도이치뱅크는 “1998년 오일쇼크 때 사우디 정부의 부채 수준과 외환보유고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며 “사우디의 달러 조달 능력은 저유가를 버틸 만큼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캐피탈이노코믹스의 제이슨 투베이 중동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사우디 정부는 (페그제 완화를 통해) 유가를 조정하기보다는 재정 건전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내다봤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예산안에 보조금 삭감과 국유자산 민영화 등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안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사우디 국영 석유업체인 아람코의 상장 검토도 같은 맥락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CNBC 방송 '월드와이드 익스체인지'에 출연해 저유가 현상과 관련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위태로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로고프 교수는 "사우디는 원래는 장기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시장에 참여했지만 현재는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사우디가 원유 생산 속도에 더 불을 붙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