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지도 중 ‘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 유적지 분포’. 역사 지명을 그 나라 언어로 표기해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한글로 표기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494장의 역사지도에 45억3500만원. 지도 1장당 국민 세금 1000만원씩 들어간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이 사업을 발주한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호섭)은 지난 연말 서강대 산학협력단과 동북아역사지도편찬위원회(위원장 윤병남 서강대 부총장)가 제출한 역사지도 도엽(圖葉)과 지명록, 결과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지도학적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해 사업 결과물로 인정할 수 없고, 문제점을 상당 기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며 '협약 해약 및 사업비 회수'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15년도 사업비 중 지급되지 않은 1억4850만원을 지출 보류하고 지급된 3억4650만원을 환수하며 편찬 사업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자료를 제출하도록 편찬위에 요구했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사업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문제되던 2000년대 중반 중국·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수록된 한국사 관련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중국이 1974년 방대한 분량으로 편찬한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 등을 역사 분쟁에 적극 활용하자 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2008년 5년 예정으로 시작된 편찬 사업은 3년이 늘어났고, 역사지도 분량도 당초 342장에서 150장가량 증가했다. 윤병남·김유철(이상 서강대), 임기환(서울교대), 배우성(서울시립대) 교수가 편찬위원을 맡았고, 전·현직 교수로 이뤄진 자문위원회와 전임 연구원, 연구보조원 등 60여 명이 참여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막바지 단계에 들어간 지난해 고대사 부분이 일부 공개되면서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고조선과 한군현(漢郡縣)의 위치를 한반도 중심으로 한 것이 식민사관에 따랐다는 재야 학자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도 시정을 요구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보낸 고대사 관련 검토 자료가 이런 내용이 담긴 동북아역사지도를 토대로 한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동북아역사재단은 10월부터 사업에 대한 집중 검토에 들어갔고, 지도학 전문가 5명의 심사 결과를 근거로 '협약 해약' 결정을 내렸다.

편찬위는 동북아역사재단의 결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해약 이유로 지적된 사항들이 쉽게 수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모든 지명을 한글로 표기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 지명은 해당 국가 언어로 표기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으로 한글 표기도 단기간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영법과 디자인 등 지도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부분은 "당초 과제에 포함됐었지만 예산이 삭감돼 향후 작업으로 돌린 것"이라는 입장이다. 편찬위는 지리학자와 역사학자가 적절하게 포함된 심사위원회를 다시 구성해 재심사할 것을 요청했다.

인문학 분야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장기 국가 정책과제가 마지막에 해약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사업 폐기가 아니라 결과물을 검토한 뒤 사업단을 재공모하는 등 계속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상당 기간 표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중진 역사학자는 "재단과 관련 학계들이 공동으로 공청회 등을 통해 제출된 동북아역사지도가 원래 취지에 맞는지, 수정·보완이 가능한지, 활용 방안이 있는지 등을 종합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