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웅얼거림의 책’이라고 할 만하다”며 산문집 두 권을 한꺼번에 낸 장석남 시인.

"침묵에 든 겨울 숲, 그러나 곧 소곤거림이 시작될 것이다. 익명을 벗고 나올 나무들을 바라본다."

장석남 시인이 산문집 '물의 정거장'과 '시의 정거장'을 한꺼번에 냈다. 장석남은 현대문학상, 미당 문학상, 김수영 문학상 등을 두루 받아 한국의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혀 왔다. 그의 산문은 겨울 숲의 적막한 풍경 속에서 들리는 소곤거림을 인간의 언어로 옮겨냄으로써 익명의 겨울나무에 제 이름과 음성을 부여한다. 영화배우 고현정이 장석남 시집의 애독자라고 할 정도로 장석남의 서정시를 좋아하는 독자가 적지 않다. 장석남의 산문은 그의 시 못지않게 서정적이다. 시적 이미지가 빛나면서 여운을 남기기에 산문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산문집 '물의 정거장'은 장석남의 서정성이 흘러나오는 근원을 선명한 언어로 그려내기에 그의 시집과 함께 읽으면 더 좋다. 산문집 '시의 정거장'은 장석남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가슴으로 읽는 시'에 붙인 짧은 글 모음이다. 시에 대한 촌평에도 서정성이 가득하다. 그는 선배 시인 중 김종삼을 특히 좋아한다. 김종삼의 시가 적막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사촌들인 외로움, 고독, 적막, 허무, 쓸쓸함 등등의 안개와도 같은 이 말들이 어쩌면 우리들에게 창조적인 삶의 에너지를 넣어주는 정신의 대지일지도 모른다. 고독과 적막이 중매한 그 많은 문학이 그렇고 허무와 쓸쓸함이 중매한 그 많은 음악이 그렇듯이 말이다."

장석남의 산문 중 '우물과 낮달 사이'가 시인의 내면을 가장 잘 비춰준다. "어린 시절부터 모양을 달리하여 내 마음에 자리보전하고 있는 우물과 무지개와 하늘의 낮달은 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통로다. 그리고 종국엔 그 자체가 되어 이 세계를 되비쳐주는, 허공을 헤매던 정신이 육체에 내려와 그걸 데리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시(詩)란 연못을 파고 그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퍼내는 풍경(風磬) 소리 같은 것이라고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의 짧은 산문 '방파제'는 한 편의 산문시다. "오랜만에 바닷가에 갔었습니다. 황혼이 아름다운 그런 장소였습니다. 몇 척의 배가 밀리는 물결에 흔들리고 멀리 섬들이 있고 그 길목 언덕엔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죽어서 바닷가에 온 사람들… 공동묘지 바로 아래가 바다였습니다. 물은 다 빠져나가 갯벌만이 드넓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마치 죽음이 그러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