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새날학교는 다문화 대안학교다. 국제결혼 가정과 외국인 유학생·근로자, 새터민 자녀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우즈베키스탄 국적 전모(19)군과 카자흐스탄 국적 김모(20)양은 각자의 국적지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학생 비자를 갖고 있는 이들은 한 달 뒤 이 학교를 졸업하면 성인이 되므로 국내 체류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전군은 2012년 2월 방문취업 비자를 받은 부모를 따라 들어와 입학, 조국(祖國)에서 정착의 꿈을 키워왔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 어쩔 수 없이 유랑한 고려인의 후손으로 4세대. 그러나 전군은 출신지로 돌아가야 한다. 게다가 가족과 떨어지는 이산(離散)의 아픔까지 앞두고 있다.
고려인 3000여명이 모여 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일원 고려인촌. 이곳에는 새해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새해 소망을 꿈꾸고 계획을 세워 다짐하는 이때, 전군과 같은 처지에 몰린 가족들이 앞으로 계속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군의 어머니는 "희망을 안고 왔는데, 아이들과 생이별해야 한다니 잠을 이룰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현재 이 학교 재학생들은 초·중·고 과정 74명. 이 중 35명이 고려인 4~5세대들이다. 자녀를 둔 고려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떻게 또다시 흩어져 유랑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조국에서마저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흩어지라는 것인데, 이런 아픔이 어디에 있을까요"라고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말했다. 그러면서 "조국이 고려인들을 품에 안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재외동포법은 동포의 범위를 1945년 이전에 출생한 고려인 3세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4세대부터는 동포의 법적 지위가 전혀 없다. 전군처럼 고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을 경우 학생 자격이 없어져 국내에 체류하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언젠가는 체류 자격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 학교와 고려인촌을 사로잡고 있다. 이와 함께 우즈베키스탄 등지 4세대 이후자들의 입국을 외교 당국은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부모의 1945년 이전 출생서류가 없으면, 3개월에 한 번씩 입출국을 반복해야 하는 비자를 주고 있다.
현재 국내 고려인은 모두 3만여명. 시간이 흐를수록 이산해야 하는 자녀 문제가 고려인 부모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려인마을 공동대표 이천영 목사는 "조국을 찾아와 우리말을 배우고 익힌 아이들이 쫓겨나는 상황에 부딪혔다"며 "고려인 동포사회를 뿌리째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외동포법규에 대한 재논의가 절실하다. 고려인들은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동포들이다. 이들의 후손이 동포로 인정받지 못하고 또다시 유랑의 길을 나서야 하는 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려인은 역사적 유산이자 민족적 자산이다. 국제시대에서 소중한 자산을 우리 스스로 망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입력 2016.0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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