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뭇 깨달았다. 굴러가는 낙엽을 보며 웃는 건 여고생뿐만이 아니란 걸. 엄마가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마다, 아들 둘은 마구 웃었다. 환호와 야유가 아주 절묘하게 섞인 감탄사를 내뱉으며 “엄마, 멋져요!”라고 했다. 엄마는 흐뭇해했다. 아이들이 크고 나선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거란다. 브라운관 밖 를 접했다.
뻣뻣할 시기인데, 우애가 정말 좋네요. 엄마와도 살갑고. 양육할 때 제1원칙이 뭐였어요? 유성이가 아기일 때 찍어놨던 동영상이 있어요. 두세 살쯤인가. 최근에 그걸 같이 봤는데, 얘가 놀라면서 그래요. "와, 엄마. 애기인 나한테 말하는 게 지금 나한테 얘기하는 거랑 똑같네!" 이 말이 뭐냐면, 애들이 아기였을 때부터 한 인격체로 대했다는 거예요. 떼를 쓰거나 할 때도 "이건 이런 이유 때문에 잘못된 거야"라고 설명을 했어요. '내가 어른이고, 너는 아기이니까 내 얘기를 들어'라는 톤으로 말한 적이 없어요. 항상 동등한 위치에서 대했죠. 엄마가 우리 의견을 항상 존중하는구나,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한 게 제1원칙이었어요.
아기 땐 말이 안 통하잖아요. 무작정 떼만 쓰면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을 때도 있었을 텐데. 그럼요~. 혼내고 싶죠. 그럴 땐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비행기를 같이 탔는데 운다. 그러면 기내 화장실에 데리고 가요. 계속 울어요. 물론 저도 속이 터지죠. 근데 참고 계속 보고 있어요. 나지막이 얘기해요. "너 울음 그칠 때까지 우리 여기 함께 있는 거야" 라고요. 그러면 지쳐서 그쳐요. 계속 울어봤자 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그 후엔 '우리 화장실 갈까?' 라는 말만 하면 애들이 '아니…' 이러면서 울음을 그쳐요.
그런 건 누구한테 배웠어요? 부모님의 양육 방식을 따른 건가?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굉장히 친했고, 동시에 빨리 성숙해졌어요.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혼자 불안하니까 두 분의 다리 역할을 많이 하게 됐죠. 그러려면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을 모두 파악해야 했고, 자연히 두 분의 입장을 다 이해하게 됐어요. 부모님은 어린 제 말에 귀를 기울였고요, 제 의견을 존중했죠. 그런 경험이 있었던지라 내 아이에게도 이런 점은 살려야겠다고 느꼈던 거죠. 지금도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혼내지 않아요. 같이 논쟁을 벌이는 거예요. 아이들도 항상 발언권이 있어요. 명백히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하지만 반론을 제기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건강한 논쟁이 성립이 안 되니까요.
마냥 '내 뱃속에서 나온 아들'이 아니라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 더 든든할 것 같네요. 그렇죠. 남자애들이 원래 엄마와 대화가 많지 않은 게 보통인데, 조잘조잘 말을 잘해요. 그렇다고 너무 깊이 있게 들어가진 않아요. 막을까봐. 선을 넘으면 문을 닫을까봐. 음…. 서로의 공간을 보장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방에 들어갈 땐 항상 노크를 하고요. 엄마로서 명령조의 말을 거의 안 하고 살았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저한테 조언도 자유롭게 했고요. 그러다 보니 버팀목 같은 느낌이 많이 들죠.
유성이와 유진이. 얼핏 성격이 좀 다른 것 같아요. 큰아들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둘째 아들은 장난기가 많아요. 애 아빠가 조그맸을 때, 생각만 해도 너무 귀여운데(웃음), 왕따였어요. 그러니까…'혼자 있길 즐기는 사람(Loner)'요. 초등학교 때 병아리 옷을 입고 맨날 혼자 걸어 다닌 거예요. 그 때 이 사람이 즐겨 찾았던 게 동네 중고책방이었대요. 거기 주인 할아버지가 가끔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그걸 같이 먹으면서 책을 보고 그랬대요. 그런 왕따…. 무슨 말인지 아시죠? 유성이가 이런 아빠의 모습을 닮았어요. 책도 좋아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지금도 학교에서 친구가 딱 두 명.(웃음) 유성이 안에는 늙은 사람이 들어앉았어요. 노인 같애. 옛날 노래도 좋아하고, 또 저한테 엄해요. "엄마, 치마가 좀 짧은 것 같은데?" 이런 말을 하지 않나. 유진이는 좀 달라요. 어느 날 저한테 물어요. "엄마, 엄마가 진짜 미스코리아였어?"라고요."응, 그런데 왜?"라고 했더니 "난 엄마가 미스코리아였던 게 참 좋아"라고 하더라고요. 유성이는 "왜 그런 델 나갔었냐"고 했고.
아니, 근데 최민수 씨가 어릴 때 혼자 다녔다고요? 네~ 네. 집에서도 그렇고. 아이들이 그래요. '아빠는 최고의 왕따'라고. 저흰 아이들에게 항상 말해요. 왕따라도 괜찮다라고요. '네가 그런 건 괜찮다. 그러나 다른 아이는 그렇게 되도록 보고 있지 마라. 밖에 나가면 뭐라도 돼야 한다'라고 하면 뭐랄까 오히려 약해질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자기를 비우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바닥에 있으면.
유성은 대학교 1학년이다.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닌다. 전공은 정치학. 동생 유진과는 4개월 만에 만났다고 했다. 동생과 오랜만에 만나니까 좋으냐고 물었더니 이를 드러내며 ‘네’란다.
유성 씨 전공이 정치학이라고요? 배우 하려는 게 아니고요? 배우에도 관심이 있는데, 꼭해야 한다는 건 아녜요. 기회가 되면 하는 거죠.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연극도 했어요. 그 학교가 연극 수준이 수준급이었거든요. 아주 잘했어요. 셰익스피어 대본을 700줄을 다 외워서요. 그렇다고 연기를 '목적지'로 삼는 건 아니에요. 전공을 살릴 수도 있죠. 유성이가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잘 써요. 역사에도 관심이 많고요. 이 중 어느 한쪽으로 밀지 않고 관심 있는 걸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두려고요. 순수하게 배우는 과정이 필요해요. 어느 한쪽으로 막 쫓기보다. 폭넓게.
(아이들) 한국말이 서툰데, 아빠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나요? 아무래도 유대감이 적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마음에 항상 걸리는 얘기예요. 유성이 어릴 때는 저도 한국말이 서툴렀어요. 그렇지만 활동을 별로 안 했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한글을 같이 배우고 쓰고 그랬어요. 그런데 유진이 같은 경우는 언어가 쉽게 오는 애가 아니었어요. 거기에 이중 언어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2살 때까지 영어에 집중한 거예요. 지금 유진이가 15살. 이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려고 해요. 아빠랑은 콩글리시로 얘기해요. 둘 사이에 진지한 얘기는 거의 필요 없었고, 간혹 필요한 경우엔 다 엄마를 거쳤어요. 아빠하고 맨날 몸으로 비비고 싸우고, 장난치면서 커뮤니케이션했어요. 아빠가 한국말로 뭐라고 나무라면 그건 또 이해해요. 물론 진지한 얘기가 있으면 저를 통해서 했죠.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그렇죠. 남자아이고, 점점 커가면서 아빠와 속 깊은 얘기가 필요할 텐데.
맞아요, 맞아요. (유진에게) 용기를 많이 주고 있어요. '엄마도 성인이 돼가지고 한국말을 배우게 됐어, 아직도 늦지 않았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요. 이번에 이 방송()가 기회인 셈이에요. 온 나라가 너를 쳐다보고 있다, 네가 한국말 못하는 걸 다 알았고, 너의 배움을 응원하고 있다라는 차원에서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필요한 거잖아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웠어요. 이번 겨울방학부터 앞으로 4년 동안 1주일에 두 번씩 선생님과 굉장히 집중해서 한글을 공부할 계획이에요.
예의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촬영 전 명함을 건네자, 강주은은 아주 귀한 걸 받는 것처럼 양손을 내밀었고, 한동안 명함을 바라봤다. 인터뷰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눌했지만, 최대한 적절한 대답을 들려주려고 애썼다. 키는 컸지만, 자세는 낮았다.
빤한 질문인데,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최민수 씨랑 결혼할 건가요? 유성 아빠는 천 번이라도 다시 너랑 결혼할 거야. 어떡해서든 너를 다시 찾을 거야, 그래요. 그러면 제가 말하죠. 아니야. 날 찾지 마. 난 한 번이면 족해…. 하하하. 결혼생활이란 게 만만한 게 아니에요. 이 과정을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힘 빠져요. 유성 아빠랑 다시 결혼하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까지 살아왔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부부가 이따금씩 이런 말을 해요. 우리 지금의 모습으로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이 모습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힘든 과정을 모두 거친 지금의 모습으로…. 갈등이 많았지만, 그 속엔 더 단단한 '믿음'이라는 게 있단 걸 안 채로 시작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그 사람 눈에 내가 들어갔다'라는 표현을 했어요. 인상 깊더라고요. 정말 나를 지킬 수 있는 남자라는 걸 알게 됐고, 그걸 바탕으로 단단한 믿음이 생겼어요. 가정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정말 남자다운 거예요. 바깥에서는 호랑이예요. 거칠고, 세고, 카리스마가 넘치죠. 집안에서는요? 다 내려놔요. 온 식구가 그 사람 위에서 방방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요. 온 식구들이 아빠를 막 괴롭혀도 다 받아줘요. 근데 또 밖에서는, 호랑이. 그런 모습을 봐오면서 이런 비밀을 안고 살아왔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남들은 '어떻게 그런 사람과 살았어요?'라고 하지만, 그 뒤에는 이런 모습이 있었던 거죠.
더 근본적으로, 결혼 자체는 어때요. 추천하세요? 추천하고 싶어요. 제가 결혼 덕분에 사람이 됐어요. 외동딸이라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래서 결혼 전엔 저밖에 몰랐어요. 이 남자를 만났죠. 제 사랑을 정말 갈구했는데, 줄 줄 몰랐어요. 결국은 알아서 다 뜯어가긴 했지만. 하하! 결혼은 분명히 어려운 거예요. 행복하고, 사랑하는 그런 감정이 다가 아니에요. 희생과 비움…. 그런 여러 가지….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어려운 장소에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눈을 감고 함께 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선택하셔야 해요.
유성, 유진 씨에게 물을게요. TV 밖 아빠 모습은 어떤가요?
유성 : 방송에 나오는 아빠는 진짜 아빠 모습 그대로예요. 아, 아니다! 사실 조금 달라요. 카메라가 앞에 있으면 조금 어색해요, 저희가. 아빠랑 장난칠 때 평소처럼 그렇게 과격하게 하질 못해요.(강주은이 옆에서 '아빠를 제대로 패질 못하지?라고 했다) 네, 사람들이 놀랄까봐.
유진 : (끄덕, 끄덕)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연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그중 하나고요. 우리 부부가 사는 모습이 드러나기 전에 유성 아빠가 항상 그랬어요. "네가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야 되는데…"라고요. 저는 "아무도 모르니까 할 수 없지(놀림투)~"라고 했죠. 지난 20년간 모든 걸 다 겪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우리 가정만의 노하우랄까? 행복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드러내도 되겠다 싶었어요. 시청자들이 '너무 심하네. 어떻게 남편한테 저렇게 하지?'라고 하는데, 유성 아빠는 방송하고 나서 이런 말을 자주 해요. "방송에 나가니까 이렇게 대우받는다. 여태까지 정말 대접 못 받다가 이 정도라도 받는다"고요. 저희 전부 다 방송한다고 자제를 한 게 이 정도예요. 근데 시청자들 반응 보니까 그대로 보여줬으면 (한국에서) 쫓겨났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하하.
유성 : 딱 하루만 100% 우리 가족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편집 없이. 100% 리얼리티.
강주은 : 미친 얘기지~ 어떻게 그렇게 해. 한국 정서에는 안 맞는 게 많을 거야.
엄마가 뭐길래. 프로그램 제목이죠. 엄마는 진짜 뭘까요? 엄마 하면 떠오르는 단어 하나씩?
유진 : 무서움(Scary)요.(강주은이 엄마는 무섭지 않잖아~라고 했더니 유진은 "You are 무서워요~"라고 했다) 물론 장난이죠, 하하. 밝음(Bright)과 매우 열려 있다(Very Open). 이 두 단어가 생각나요.(강주은이 '그래! 잘했어! 유성아, 너도 동의하니?'라고 물었다)
유성 : 물론 동의해요. 그러나 무엇보다 '물(Water)'이 떠올라요. 아빠는 불이에요. 불은 빨리 퍼지고, 무섭죠. 그런데 물은 불을 죽여요. 물만이 불을 죽이죠. 물은 모든 물질 중에 가장 강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