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테니스 선수 샘 그로스(29)에겐 세계에서 서비스가 가장 빠른 선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지난 2012년 한국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챌린저대회 부산오픈에서 시속 263.4㎞ 서비스를 꽂아 테니스 사상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쾌속 서비스가 성적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힌다. 4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개막한 시즌 첫 ATP 투어 대회 브리즈번 인터내셔널 단식 본선 1회전에서도 자신보다 서비스가 느린 한국의 정현(20)에게 0대2(6―7 4―6)로 패배했다. 그로스의 서비스는 이날 최고 시속 230㎞를 찍었고, 정현은 200㎞ 안팎이었다.
전문가들은 '빠른 서브'와 '좋은 서브'가 동일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용국 NH농협은행 감독은 "현대 테니스에서 서비스의 비중은 전체 경기의 30%를 넘는다"면서도 "시속 200㎞를 넘는 서비스를 갖고 있다면 얼마나 실수 없이 성공시킬 수 있는지, 어떤 코스로 보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그로스의 제1서비스 성공률은 62%(84개 중 52개 성공)에 불과해 정현(66%·73개 중 48개 성공)에게 뒤졌다.
가장 빠른 서브 기록을 가진 상위 선수 5명 중 역대 세계 랭킹이 10위권 안에 들었던 선수는 캐나다의 밀로스 라오닉이 유일하다. 제1서비스 성공률이 50위권 안에 드는 선수도 크로아티아의 이보 카를로비치뿐이었다. 박 감독은 "야구에서 아무리 강속구를 갖고 있어도 제구력이 나쁘면 승률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메이저대회 14회 우승을 차지한 라파엘 나달의 경우 제1서비스 평균 속도가 200㎞를 밑돌지만 성공 확률은 69%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선수 가운데 다섯째로 높다.
로저 페더러(세계 3위)는 속도와 정확성을 겸비한 선수로 꼽힌다. 최고 속도는 시속 230㎞로 톱10에 들지 못하지만(역대 29위)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서브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의 서비스는 정확하게 코트 구석에 떨어질 뿐 아니라 엄청난 회전이 걸려 있어서 바깥쪽으로 휘어나가 상대가 손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페더러는 "관중은 빠른 서비스에 열광하지만 그것만으론 최고가 될 수 없다"며 "예측할 수 없는 코스로 정확하게 서브할 수 있어야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