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프로야구의 피츠버그 파이리츠(pirates)는 해적이라는 팀 명칭 그대로 '보물'을 찾아 세계 어느 곳이든 간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던 한국 KBO의 강정호에게 베팅해 성공했고, 최근에는 야구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눈길을 돌린다.
파이리츠의 보물찾기 전통은 뿌리가 깊다. 지난 2008년엔 야구 원류인 크리켓 왕국 인도에서 오디션을 거친 '야구 문외한'들을 메이저리그 선수로 발굴하는 실험을 했다. 올해엔 메이저리그 사상 첫 아프리카 선수까지 빅 리그에 데뷔시킬 참이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은 최근 '2016년 일어날 수 있는 10대 사건'을 소개하면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마이너리그 소속팀 유격수인 기프트 은고에페(26)의 빅리그 데뷔를 꼽았다. '저비용 선수, 고효율 성과'를 추구하는 파이리츠의 정신은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FA(자유계약선수) 거품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야구가 참고할 만하다.
◇'백만달러짜리 팔'에 주목하다
2008년 11월 인도에선 '밀리언달러 암(Million Dollar Arm·백만달러짜리 팔)'이라는 별난 TV 리얼리티쇼가 있었다. 크리켓 왕국 인도에서 야구 유망주를 찾자는 의도로 기획된 이 행사에 3만7000명이 지원했다. 우승자는 린쿠싱과 드네쉬 파텔이라는 창던지기 출신 두 인도 청년이었다. 린쿠싱은 140㎞의 공을 표적에 정확하게 던져 우승했고, 파텔이 2등을 했다. 이들은 미국 유명 대학 투수 코치의 조련을 받은 다음 2008년 11월 메이저리그 시장에 나왔다.
당시 스피드건에 찍힌 린쿠싱의 구속은 148㎞였지만 뒤늦게 야구를 배운 인도 청년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때 선뜻 계약금을 지불한 구단이 바로 파이리츠였다. 비록 파텔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일찍 야구 선수 생활을 접었지만, 린쿠싱은 2009년 미국 야구 역사상 첫 인도 국적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린쿠싱은 이후 호주·도미니카 등지에서도 활약했다. 린쿠싱과 지난해 11월 파이리츠와 계약하며 다시 해적의 품으로 돌아왔다.
◇파이리츠의 최초는 MLB 최초
강정호가 파이리츠 유니폼을 입는 과정에도 비슷한 면이 있다. 다른 MLB 구단들은 KBO리그 수준을 낮게 보고 강정호를 외면했으나 파이리츠는 그에게 포스팅 금액 500만달러와 4년 총액 1100만달러를 선뜻 투자했다. 강정호는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지만, 타율 0.287 15홈런 58타점으로 빅 리그에 연착륙했다. 헌팅턴 단장은 "우리는 강정호를 모든 잣대로 세밀하게 분석했고, 성공한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빅리그 데뷔를 노리는 은고에페는 200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MLB 아카데미에 초대됐다가 파이리츠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어렸을 때 크리켓과 축구로 몸을 단련했던 그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남아공 대표로 출전해 멕시코를 상대로 3루타 2개를 때리며 시선을 끌었다. 은고에페는 지난해 트리플A에 진입한 데 이어 시즌 말 40인 출전 명단에 포함되는 등 빅리그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KBO엔 먼 나라 얘기
파이리츠는 부자 구단이 아니다. 2015시즌 연봉 총액이 6280만달러로 MLB 밑바닥권이다. 선수 영입에 거액을 쏟아부을 여력이 없다. 파이리츠가 해외 틈새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생존 전략의 하나였다. 파이리츠가 처음 린쿠싱과 파텔을 영입할 때 든 계약금은 고작 8000달러(약 950만원)였다. 강정호의 지난 시즌 활약상은 연봉(250만달러)을 웃돌고도 남았다. 과감한 도전적 투자가 나름의 결실을 본 것이다.
국내 팀은 이런 모험을 할 엄두도 못 낸다. 즉시 전력감인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데 바쁘다. 프로구단답게 선수를 키우고 이적시켜 흑자를 내는 건 남의 나라 이야기다. 오히려 선수 영입에 과당경쟁을 벌여 FA 몸값만 천정부지로 높여놓았다. 한 야구인은 "현재 국내 리그는 소수 정상급 선수들의 주머니만 채워주는 '빈익빈 부익부'의 기형적 구조가 됐다"며 "국내 야구단도 파이리츠처럼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해 만성 적자를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