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화제다. 1988년 시대상을 정교하게 재연하며 팬들을 향수에 젖게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8년, 그때도 축구의 시계는 돌아갔다. 그 시절, 세계축구에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키워드는 '전직 한국대표팀 감독'

1988년 열린 서울올림픽, 유럽축구연맹(UEFA)컵(현 유로파리그의 전신), 유러피언컵(현 유럽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우승의 주역들 사이에는 묘한 인연의 끈이 연결됐다. 키워드는 '전직 한국대표팀 감독'이다.

한국인들의 자긍심을 극대화시켰던 서울올림픽, 축구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당시 올림픽은 연령별 제한이 없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치로 페레라, 드라간 스토이치코프 등 스타급 선수들이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그 중 최강은 단연 브라질이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호마리우-베베토 콤비를 비롯해 유럽무대를 주름잡던 카레카 등이 모두 나섰다. 브라질은 결승까지 승승장구했다. 4강에서 난적 서독을 승부차기 끝에 제압했다. 결승전 상대는 구 소련이었다. 모두가 브라질의 우승을 점쳤다. 놀랍게도 결과는 소련의 2대1 승리였다. 당시 소련을 우승으로 이끈 감독은 아나톨리 비쇼베츠였다.

UEFA컵은 말그대로 드라마였다. UEFA컵은 지금의 유럽챔피언스리그와 비슷했다. 명성은 유러피언컵이 컸지만 인기는 UEFA컵이 더 많았다. 레버쿠젠은 에스파뇰과의 결승 원정 1차전에서 0대3으로 패했다.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다득점 승리를 해야 우승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차붐' 차범근의 머리에서 기적이 완성됐다. 2-0으로 앞서 있던 후반 39분 차범근이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넣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한 레버쿠젠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8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UEFA컵 우승을 경험한 차범근은 다른 팀에서 UEFA컵 우승을 경험한 9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유러피언컵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다크호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유러피언컵은 각국 리그 1위만이 참가하는 대회였다. 전년도 에레디비지에 챔피언이었던 PSV는 1라운드에서 터키의 갈라타사라이, 2라운드에서 오스트리아의 라피드 빈, 8강에서 보르도를 제압했다. PSV의 행보는 여기까지라고 했다. 하지만 4강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레알 마드리드를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PSV는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의 명문 벤피카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사상 첫 유러피언컵을 수확했다. PSV는 이 해 리그와 FA컵까지 거머쥐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당시 PSV의 수장은 바로 거스 히딩크다.

이들은 나란히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올랐다. 비쇼베츠 감독은 1994년 기술고문으로 한국축구와 인연을 맺은 후 1994년부터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올림픽대표팀을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본선에 올렸다. 차범근은 1997년 당시 최악의 위기에 빠진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도쿄대첩 등 예선에서 승승장구하며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2001년 한국대표팀에 부임한 히딩크 감독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다.

▶지금은 MSN, 그때는 오렌지 삼총사

2016년 현재 최강의 트리오는 단연 리오넬 메시-루이스 수아레스-네이마르로 이루어진 MSN 트리오다. 이들은 지난시즌 바르셀로나를 트레블(리그, FA컵, 유럽챔피언스리그 3관왕)로 이끌었다. 1988년 최고의 트리오는 네덜란드 대표팀과 AC밀란에서 함께 뛰던 마르코 판 바스턴-뤼트 굴리트-프랑크 레이카르트 '오렌지 삼총사'다. 이들은 1988년 네덜란드의 사상 첫 유럽선수권대회 우승과 9년만에 AC밀란의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여전히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 판 바스턴과 섹시한 축구를 표방한 공격형 미드필더 뤼트 굴리트,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오간 '슈퍼맨' 레이카르트는 네덜란드와 AC밀란의 중추로 활약했다.

이같은 활약을 인정받아 1988년 오렌지 삼총사 전원은 세계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발롱도르(현 FIFA 발롱도르의 전신) 1, 2, 3위 휩쓸었다. 한 소속팀에서 세 선수가 1, 2, 3위에 모두 오른 것은 1956년 상 제정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도 가장 멋진 골 베스트 부문에서 빠지지 않는 유로88 소련과의 결승전 발리슈팅의 주인공 판 바스턴이 1위에 올랐다. 판 바스턴은 다음해 2연패에 성공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