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 화장실 폭발음 사건 용의자 전모(27)씨가 지난 9일 일본을 다시 방문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만약 전씨가 국내에 계속 있었다면, 국내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전씨가 국내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법원이 전씨를 일본에 보내지 않더라도, 우리 수사 당국이 일본 요청을 받고 전씨를 기소해 처벌할 수는 있다.
4년 전 야스쿠니 신사 화재 사건에 연루된 중국인이 한국으로 도피한 적이 있었다. 우리 법원은 2013년 1월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중국인 류창(劉强·41)씨에 대해 “정치적 범죄’라며 일본으로의 인도를 거부하고 중국으로 보냈다.
류씨는 2011년 12월 26일 오전 3시40분쯤 야스쿠니 신사 담을 넘어 신문(神門) 중앙문 남쪽 기둥에 다다랐다. 류씨는 미리 준비한 휘발유 5L 중 2~3L 정도를 뿌리고 오전 3시56쯤 라이터로 불을 붙여 신문 일부를 태웠다. 류씨는 범행 직후 한국으로 입국했고, 2012년 1월 6일 주한 일본대사관 건물에 화염병을 던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1000번이나 열렸는데도,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났기 때문이다. 류씨는 이 일로 국내 법원에 기소됐고,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일본 정부는 2012년 5월 야스쿠니 신사 방화와 관련, 류씨의 신병 인도를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우리 법원은 그해 11월 류씨가 10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구속한 다음, 범죄인 인도 재판을 진행했다.
류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가족사(家族史)와 야스쿠니 방화 당시 정치 상황, 범행 일시·시각의 상징적 의미 등을 내세워 범죄인 인도에 해당하지 않는 ‘정치적 범죄’라고 주장했다.
류씨는 1974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1985년 사망 직전 류씨에게 자신의 과거를 알려줬다. 평양 출신의 한국인으로 대구·서울 등지에서 살다가 1942년 목포항을 통해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중국에 남아 외할아버지를 만났고, 류씨의 어머니를 낳았다는 것이다. 외할머니는 또 외 증조부가 1940년대 초 서울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한글을 몰래 가르쳤다는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고문을 받아 사망했다고 말했다.
류씨는 자신의 할아버지도 항일 신사군(新四軍) 단장으로 항일 투쟁을 하다가 전사해 중국 정부로부터 ‘혁명 열사’ 칭호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류씨는 평소 인터넷에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했고, 2005년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일본 제국주의 타도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2006년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도 시위를 했다.
중국에서 영어 학원 강사, 심리치료사로 일하던 류씨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자, 그해 10월 피해 지역 주민에 대한 심리치료 자원 봉사를 위해 일본으로 갔다. 류씨는 그해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해결을 촉구했는데도, 일본 노다 총리가 논의 자체를 거부하면서 주한 일본대사관 함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그는 A급 전범 14명을 신으로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러,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경고하고 반성·사죄를 촉구하기로 했다.
류씨는 범행 날짜·시각을 정할 때도 의미를 부여했다. 범행 날짜를 외할머니 기일이자 현 중국 정부를 수립한 마오쩌둥의 생일인 12월 26일로 정했다. 범행 시각도 할아버지가 속했던 항일 신사군의 ‘四’, 일본 제국주의의 죽음을 의미하는 ‘死’와 발음이 비슷한 오전 4시로 정했다고 주장했다. 류씨는 야스쿠니 신사 방화 후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입국해 외할머니와 연고가 있는 목포·대구, 외증조부가 사망한 서울 서대문형무소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고법은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과 류씨의 가족력, 이 사건 전후 정치 상황, 류씨의 방화 전후 행동 등을 볼 때 류씨의 범행 동기는 일본 정부의 위안부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 및 관련 정책에 대한 분노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류씨 범행 목적이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신념에 따른 것으로 이를 독단적 견해라고 볼 수도 없고, 피해 정도를 볼 때 방화로 인한 위험성도 크지 않았다. 류씨 범행이 일본 정부에 항의하고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볼 때 ‘정치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