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에서 22일째 은신 중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7일 "노동 개악을 막아야 한다는 노동자의 소명을 저버릴 수 없다"며 노동 개혁을 둘러싼 '국회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조계사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오는 16일 민노총 총파업과 19일 3차 서울 도심 집회 지휘, 연말까지 이어질 국회의 노동 관련 입법 저지를 명분으로 조계사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얼마 전 조계사 신도들이 "빨리 나가라"고 했을 때 "(2차 도심 시위가 예정된) 5일 오후 혹은 6일 오전까지 경찰에 자진 출두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그는 이날도 지난달 14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난동을 주도했던 데 대해서는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을 향해 "공권력의 압박으로 신도들 불편이 크다"며 경찰 병력 철수를 요구했다.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조계사로 숨어든 자신 때문에 비롯된 불편을 경찰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가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2차 집회를 평화 시위로 끝낸 뒤 여론이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판단을 토대로 조계사를 본거지 삼아 민노총의 투쟁을 지휘하겠다는 의도를 뚜렷하게 표명한 셈이다. 한 위원장의 이런 태도를 보면 지난 5일의 시위는 그가 조계사에 장기간 머물며 투쟁을 이끌어 갈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위장(僞裝) 평화 시위' 아니었느냐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겐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다. 지난달 14일 난장판 시위를 선동한 것도 그였다. 경찰에 따르면 민노총은 지난달 시위 때 차량 7대를 동원해 현장에 불법 시위용품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2차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해서 그의 이런 혐의들에 면죄부(免罪符)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종교 시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치적으로 핍박받는 양심범들의 피난처였다. 워낙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여서 종교계가 민주화 인사들을 보듬고 배려하는 것을 국민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라가 민주화된 지 30년이 다 된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닐뿐더러 한 위원장도 도저히 양심범이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저 기득권 노조들이 주축이 된 민노총을 이끌며 '나라를 마비시키겠다'면서 폭력 시위를 이끌고 부추겨온 범법자에 불과하다.

종교 시설이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라는 건 우리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없다. 이 때문에 경찰이 당장 조계사에 들어가 그를 체포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탄압받는 양심수 흉내를 내며 종교와 공권력의 갈등을 일부러 유발하겠다는 것이 한 위원장의 속셈인지도 모른다. 경찰이 조계사 진입을 주저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마냥 방치할 순 없다. 그는 "불자(佛子)도 대부분 노동자들"이라며 "노동 개악이 중단될 때까지 함께해달라"고 조계종에 촉구했다. "저의 신변은 부처님께 맡기도록 하겠다"고도 했고, 훗날 경찰 출두도 자신을 보호해온 조계종 도법 스님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투쟁 노선에 민노총과 조계종을 한데 묶으려고 혼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조계사에서 총파업과 도심 시위를 선동하는 메시지를 내보낼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조계종은 조계사를 민노총의 '투쟁본부'로 내준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이제 조계종은 한 위원장의 호소에 호응해 불교계 차원에서 그를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그의 요청을 거부할 것인지 분명한 답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민은 지쳐가고 있다. 조계종의 선택을 불교도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사설] 박 대통령, 野·노조 지도자 만나 간절하게 호소해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