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남성 스즈키(鈴木·가명)씨는 3개월간 육아 휴직을 쓴 뒤 최근 직장에 복귀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직장에서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휴직 당시 상사였던 A씨(40대 남성)는 순순히 휴직을 허락해 줬다. 하지만 스즈키씨가 복귀했을 때 상사는 B씨(50대 남성)로 바뀌어 있었다. '육아는 여성이 할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B씨는 스즈키씨를 사사건건 깎아내리고, 날마다 잔업을 시키면서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인사평가에 반영할 것"이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세계는 아빠 育兒휴직 느는데… 일본은 '파타하라'
마이니치(每日)신문은 22일 "남성의 육아 휴직 비율이 낮은 것은 상사의 '파타하라'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파타하라'는 부성(父性)을 뜻하는 영어 단어(paternity)와 괴롭힘을 뜻하는 영어 단어(harassment)를 합쳐서 만든 일본식 조어다.
일본은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1999년 "육아를 하지 않는 남자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이른바 '이쿠(育)맨('육아'와 '남자'를 합친 말)' 양성에 나섰다. 당시 남성 육아 휴직 사용 비율은 0.4%였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작년 말에도 남성 육아 휴직 사용률은 2%대로,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었다. 휴직 기간 역시 60%가 2주에 그쳤으며, 한 달 이상 휴직하는 남성은 200명 중 한 명꼴이었다.
반면 서구에서는 몇 년 전부터 육아를 하는 젊은 아빠들이 인기를 끄는 추세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빠라는 뜻을 가진 '다이퍼 대디(diaper daddy)', 육아에 적극적인 북유럽 아빠들을 일컫는 '스칸디 대디(Scandi daddy)' 등이 유행어가 됐다. 브래드 피트, 애슈턴 커처같이 기저귀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할리우드 남성 스타들도 파파라치에게 자주 포착됐다. 최근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첫아이가 태어나면 2개월 육아 휴직을 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2010년 유자키 히데히코(湯崎英彦) 히로시마 도지사(당시 45세)가 한 달간 육아 휴직을 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평범한 남성이 육아 휴직을 쓰려면 눈치가 보이는 게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의 현실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쉬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성의 '가정 진출'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위해 근무 시간 유연화와 직장 풍토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올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차지 비중이 5% 돌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는 2212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동기의 1573명에 비해 40.6% 증가한 수치다. 전체 육아휴직자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5.1%였다. 육아휴직제도가 도입된 1987년 이후 역대 최대다. 1년 전 4.2%에 비해서는 0.9%포인트 늘었다.
2001년 2명 뿐이던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매년 늘어 2002년 78명, 2003년 104명, 2004년 181명, 2005년 208명, 2006년 230명, 2007년 310명, 2008년 355명, 2009년 502명, 2010년 819명을 기록했고, 2011년(1402명)에 들어 1000명을 돌파했다.
남성 육아휴직자 64.5% 서울·경기 편중… 제조업 종사자 632명 최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 보다는 근로자 수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서 남성 육아휴직자가 더 많이 늘어났다. 올 상반기 육아휴직자 중 대기업 비중은 55.7%로, 1년 전(50%) 보다 5.7%포인트 커졌다. 지역별로는 남성 육아휴직자의 절반이 넘는 64.5%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 몰려 있었다.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광주(118.2%)였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 종사자가 632명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출판·영상·방송통신·정보서비스업(275명), 도·소매업(229명), 과학·기술서비스업(166명) 등의 순이었다. 육아를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한 남성 근로자는 올 상반기 992명으로 1년 전(516명)보다 2배 가까이 불어났다. 고용부 관계자는 "남성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된데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아빠의 달 제도 효과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아빠의 달은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차례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두 번째 사용자의 육아휴직 1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원)를 지급하는 제도다. 도입 후 지난 6월까지 9개월 간 제도 혜택을 본 인원은 총 681명(남성 595명·여성 86명)에 이른다. 고용부는 남성 육아휴직 확산을 위해 오는 11월8일까지 수기 공모를 진행할 계획이다. 육아휴직 또는 근로시간 단축 경험담을 제출하면 우수작을 선정, 최대 100만원의 상금을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