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섬이었던 나오시마는 세계적인 여행지가 되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추(地中)미술관'은 기존 미술관의 개념을 완전히 바꾼 건축물로 극찬받았고, 제임스 터렐·월터 드 마리아 등 진귀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된 '베네세 하우스'는 "아트로 둘러싸인 세계 최고의 호텔"로 인정받아 예약하기도 힘들다. '아이러브유' 목욕탕은 벌거벗은 채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 인구 3000명 오지 섬에 해마다 7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
[쓰레기더미 위에 핀 예술의 섬… 느릿느릿 걷다보면 여기가 '천국']
서울시 초청으로 지난 16일 한국에 온 후쿠타케 회장에게 "왜 어린이가 아니라 노인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둬도 즐거우니까요. 노인은 다릅니다. 약간의 돈이나 물건 같은 건 기쁨이 될 수 없죠.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있는 섬들에 예술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그가 섬과 인연을 맺은 건 후쿠타케 서점(베네세 그룹 전신) 창업자였던 아버지 때문이다. "나오시마에 어린이를 위한 국제캠프장을 만들다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대신 캠프장을 짓느라 섬을 드나들면서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란 화두에 빠져들었죠." 도쿄에서 나고 자란 그의 눈에 세토내해의 풍광과 섬 사람들의 소박하고도 자급자족적인 삶은 '충격'이었다. "누가 제일 강하고, 누가 돈을 제일 많이 버느냐에만 관심 있는 도쿄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행복이었죠."
문제는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이었던 세토내해 섬들이 산업폐기물로 황폐화돼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폐허가 된 구리제련소 부지를 사들인 뒤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섬을 되살릴 궁리를 했다. 안도 다다오가 합류했다. "그가 도쿄가 아닌 오사카 출신이라 좋았어요. 권투 선수 출신이기도 했고요(웃음)."
설마 이 오지 섬으로 난해한 현대미술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올 거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는 "물론!"이라며 싱긋 웃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니까요." 치과, 목욕탕, 신사 등 버려진 전통 민가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에(家) 프로젝트'를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원래 있었던 것들을 재창조하는 작업이죠. 주민들도 동참합니다. 작가가 떠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남아 섬 여행자들에게 작품의 의미를 설명해주고요. 이것을 우리는 '나오시마 메소드'라고 부릅니다." "나는 국가와 행정기관에 맞선 레지스탕스"라며 웃는 후쿠타케 회장은 '공익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기업인이기도 하다.
"기업이 창출한 이윤은 문화에 쓰여야 합니다. 경제는 문화에 종속돼야 하지요. 돈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베네세 그룹은 세토내해 섬을 부활시키는 데 6500억원을 쏟아부었다.
후쿠타케 회장은 2010년 나오시마에 한국 작가인 이우환 미술관을 건립해 이목을 끌었다. "단순할수록 깊어진다"는 게 이우환을 사랑하는 이유다. 항구 선착장에 놓인 구사마 야요이의 '점박이 호박' 조형물이 섬의 상징이 된 것은 "우연"이라고 했다. "1994년 섬에서 열린 전시에 호박 작품이 처음 선보였죠. 그땐 참 이상하다 싶었는데, 바닷가에 놓인 호박을 보고 있자니 예술은 그것이 놓여지는 장소에 따라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됐지요."
후쿠타케 회장은 내년 3월부터 열리는 '세토우치 국제예술축제'에 꼭 와보라고 했다. "섬에 오면 주민들을 만나보세요. 섬이 예술을 품은 뒤 그들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꼭 물어봐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큰 호박이 있는 '나오시마섬'
나오시마섬의 여정에 시작과 끝은 모두 예술작품이다. JR 다카마쓰역 인근 터미널에서 페리를 타고 나오시마섬으로 향한다. 섬의 미야노우라항에 배가 정박하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거대한 붉은 호박이다. 푸른 잔디에 마치 박혀 있는 그 모습이 마치 불시착한 UFO 같다. 이 작품은 설치 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草間 彌生)의 작품이다. 시작부터 나오시마섬의 강렬한 인상이 뇌리에 박힌다. 작은 섬과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주변 바다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나오시마섬 여행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자전거나 걸어서 어디든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에서 명소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시간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몸은 좀 고되더라도 도보여행이 더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명소'를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미야노무라항부근 자전거 렌탈샵에서 빌려 타고 페달을 섬 반대편 혼무라항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혼무라 지구의 100년 넘은 오래된 빈집과 염전창고에서도 현대미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집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난 뒤 남은 7채의 빈집을 활용해 집 자체를 작품화한 것이다.
나오시마의 집 프로젝트는 '공간디자인의 언어'(권영걸 저)라는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폐허가 된 집이나 사람이 살고 있는 나오시마의 전통 가옥을 예술가에게 제공하여 뮤지엄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예술가 1인의 작품이 하나의 집을 변화시키고 이러한 뮤지엄이 마을을 이루어 예술과 전통주택에 대한 관람을 할 수 있다. 마을 주민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섬을 찾은 관광객의 도우미 역할을 한다." (P. 227)
이 프로젝트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티스트들과 마을사람들이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폐허로 남아 허물어버렸을 공간이 구(舊)와 신(新)의 만남의 조화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나오시마의 이런 시도는 옛것을 허물기만 하는 세태(世態)에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붐업 재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