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여러분이 좋아하는 로봇 '베이맥스'가 실물로 찾아옵니다."

지난해 세계적 인기를 끈 디즈니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의 주인공은 헬스케어 로봇 '베이맥스'다. 커다란 풍선처럼 생긴 베이맥스는 상처 입은 아이를 포근히 감싸주는가 하면, 다친 사람을 알아서 찾아내 치료해준다. 상상 속 로봇 같지만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하는 연구팀이 베이맥스를 실제로 만들고 있다. 디즈니가 운영하는 과학기술연구소인 '디즈니 리서치'의 김주형(37) 박사다. 그는 "뼈대는 거의 완성됐고, 피부 소재나 관절 움직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빅히어로’의 주인공 로봇‘베이맥스’를 실제로 만들고 있는 디즈니 리서치의 김주형(오른쪽) 박사와 미국 카네기멜런대 크리스토퍼 애키손 교수. 가운데는 '베이맥스' 모형이다.

김 박사는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걷는 이족보행(二足步行) 로봇 전문가다. 그가 지난 3~5일 서울 KIST에서 열린 '세계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학회'에 참석해 카네기멜런대 크리스토퍼 애키손 교수와 베이맥스 제작 과정을 발표했다. 애키손 교수는 피부가 말랑말랑한 '소프트 로봇'의 권위자다. 2011년부터 풍선 형태 로봇을 만들고 있었는데, 연구실을 방문한 디즈니 관계자들이 보고는 영화 '빅 히어로'를 구상했다.

김 박사는 "베이맥스가 원래 로봇 연구실에서 탄생한 캐릭터인 만큼 실제로 구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베이맥스를 통해 로봇이 그저 딱딱하고 강력한 존재만은 아님을 알게 됐어요. 베이맥스를 실제로 만드는 과정은 과학기술이 애니메이션에 아이디어를 주고, 다시 애니메이션은 과학기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줘 발전을 이끄는 좋은 사례입니다."

김 박사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종합기술원 휴머노이드팀에서 일했다. 안정적 이족보행과 자연스러운 관절 움직임 설계가 전문 분야다. 하지만 삼성이 2013년 휴머노이드팀을 정리하자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갔다.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을 떠난 이유는 '꿈'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태권브이, 스타워즈, 건담의 프라모델과 피규어를 모았습니다. 수천만원 썼죠. 수집가로도 유명했습니다. 언젠가 이런 로봇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항상 갖고 있었죠."

디즈니를 택한 것도 꿈을 이룰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디즈니는 과학기술에서도 세계 최고 역량을 갖고 있다. 미국 글렌데일, 피츠버그, 보스턴, 스위스 취리히 등 6곳에서 3D그래픽, 뇌 과학, 로봇을 연구하는 '디즈니 리서치'를 운영 중이다. 여기서 다양한 로봇, 가상현실, 모션캡처가 개발됐다. 디즈니는 1966년 세계 최초의 움직이는 로봇인 '링컨'을 만든 로봇산업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김 박사는 "테마파크에 가면 사람이 탈을 쓰고 캐릭터 역할을 하는데, 그러면 키가 2m나 되고 현실감이 떨어진다"면서 "캐릭터를 실제 모습대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로봇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맥스 이외에 다른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도 만들고 있다. 어떤 캐릭터인지 묻자, 애키손 교수가 대신 답했다. "디즈니 리서치는 대부분의 연구가 비밀입니다. 미리 공개되면 아이들 환상이 깨질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