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의 많은 여자아이들이 그랬듯 나 역시 피아노를 배웠다. 네 살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쳤으니까 꽤 오랜 기간이었다. 학원에 가면 '하논'을 가장 먼저 연습했었다. 한 번 칠 때마다 피아노 오른쪽 맨 마지막 건반 위에 놓인 짧은 몽당연필을 한 칸씩 왼쪽으로 옮기는 게 규칙이었다. 그 몽당 연필이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에 올 때까지 피아노를 반복해서 쳤다. 피아노의 흰색 건반 수는 52개. 같은 곡을 52번씩 반복해서 쳐야 했다. 죽을 맛이었다.

순위를 매기고 경쟁하는 것에 반감이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쇼팽 콩쿠르'가 어떤 대회인지 조금은 알고 있었다. 쇼팽 콩쿠르는 5년에 한 번 열린다. 전 세계 16세에서 30세까지의 피아니스트들은 3주 동안 예선을 치르고 1차, 2차, 3차 본선에 결승까지 치러내야 한다.

연주곡은 오직 쇼팽, 연주자들은 한정된 시간 안에 스스로 해석한 쇼팽을 연주하며 누군가의 단점을 찾아내는 데 이력이 난 심사위원들을 설득해내야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야간 풍경. 코지마 마사유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은 숲속에 버려진 피아노가 유일한 친구인 소년 카이와 부모님의 강압에 못 이겨 늘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치던 소년 슈헤이의 성장담을 그린 작품이다. 백영옥은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렸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우승자 조성진을 떠올린다.

사실 쇼팽 콩쿠르는 자신들이 원하는 심사 기준에 부합하는 연주자가 없을 때 1등을 뽑지 않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1990년 12회, 1995년 13회 대회 때는 'Non 1st prize', 즉 2회 연속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고작 5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인데, 그마저 1등이 매회 나오는 것도 아니란 뜻이다. 그런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등을 했다고 했다. 내가 꾸던 꿈을 그가 대신 이뤄준 것도 아닌데 혼자서 가슴이 벅찼다.

며칠 동안 조성진이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었다. 피아노 소나타, 콘체르토, 에튀드, 왈츠, 발라드, 폴로네즈…. 뛰어난 연주자의 실황 연주를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피아노 건반이 휘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손가락과 손목의 부드러운 움직임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 현상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 눈엔 단단한 피아노 건반이 정말 고무처럼 부드럽게 휘거나 튀는 게 보인다. 조성진의 폴로네즈를 들으면서도 그런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 특히 피아노와 대화하는 듯한 그의 얼굴을 보면 그가 쇼팽의 유령과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알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을 봤다. 아픈 할머니 때문에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한 슈헤이는 유명 피아니스트 아버지를 둔 음악가 집안의 아들이다. 아이는 전학 온 첫날 자기소개를 하다가 무심결에 꿈이 피아니스트란 말을 던진다. 짓궂은 아이들은 당장 슈헤이에게 "무시무시한 귀신이 나오는 숲이 있는데, 그 숲의 피아노를 치고 오면 너를 인정해주겠다"는 말을 하며 놀리기 시작하는데, 오직 한 아이만 그의 편을 들어준다.

"숲의 피아노에서는 소리가 난다고! 그건 내 피아노라고!"

아이의 이름은 카이. 심지어 음악 선생님 아지노마저도 숲의 피아노에선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카이는 자신의 말이 맞다고 계속해서 우긴다. 창녀 출신의 엄마에게서 태어난 카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아이는 단박에 자신처럼 외로워 보이는 슈헤이를 알아본다. 무엇보다 슈헤이가 피아노를 치는 아이란 걸 알고 숲 속의 피아노 앞으로 그를 초대한다. 숲 속에 놓여 있는 의문의 피아노. 콩쿠르에 참여하기 위해 혹독한 연습 중이었던 슈헤이는 피아노를 치기 위해 건반에 손가락을 올려놓지만, 아무리 치려고 해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카이, 이건 고장 난 피아노 같아."

카이는 고개를 젓더니 곧장 숲 속의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아무리 치려고 해도 소리조차 나지 않던 피아노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것에 슈헤이는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카이는 단 한 번도 피아노 교습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숲 속에 버려진 피아노를 발견하던 날부터 그냥 피아노 위에 앉아 놀면서 스스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은 현대판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이야기다. 시골 초등학교 음악 선생님인 아지노는 교통사고로 팔을 다친 후 은퇴한 전설의 피아니스트였고, 숲 속의 버려진 피아노는 그의 피아노였다. 정확히 말해 그가 아니라면 누구도 연주할 수 없는 '아지노만을 위한 피아노'였던 것이다. 그런 피아노를 카이는 너무나 쉽게 연주한다. 엄청난 음악성과 테크닉인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천재는 미래의 천재를 한눈에 알아본다. 숙명이라 생각한 아지노는 레슨을 거부하는 자유분방한 카이를 설득해 그를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게 한다.

부모님의 강압에 못 이겨 늘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치던 슈헤이는 카이 덕분에 진심으로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의 숲'은 두 친구의 아름다운 경쟁을 보여준다. 만화에선 세상이 말하는 승자와 패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피아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짜 승자가 예선에서 탈락한 카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이가 제아무리 독특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했다 해도 콩쿠르 규정을 지키지 않는 한 우승을 차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이 세상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원작 만화는 이들이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해 결국 쇼팽 콩쿠르를 목표로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마지막 종착역이자 시발점이 쇼팽인 것이다.

어떤 곡이든 듣기만 하면 연주했던 카이가 빠른 템포의 '강아지 왈츠'를 치지 못해 아지노를 찾아가는 걸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하논을 52번씩 반복해서 치던 그때 이런 걸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지 아무도 내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준 적이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쇼팽의 폴로네즈처럼 빠른 곡을 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연습 과정이란 걸. 만약 그때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쯤 달라져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유튜브로 조성진의 연주 동영상을 한 번 더 봤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펼쳐지는 조성진의 연주는 숲의 달빛처럼 아름다웠다. 격렬하게 빠르고 느릿하게 부드러운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그것이 마치 피아노에 건네는 수화(手話)처럼 느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피아노의 숲―코지마 마사유키 감독의 애니메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