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장기 파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 한국과 옛 체류국 양쪽에서 연금을 타는 이가 늘고 있다. 또 외국 이민을 떠나면서 국민연금공단에 낸 돈을 일시금으로 찾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이 이 각국과 맺은 '사회보장협정' 덕분이다. 사회보장협정은 파견·이민자들의 상대국 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 양국 합산 연금 가입 기간이 일정 기간을 채웠을 경우 연금을 두 곳에서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옛 체류국서도 연금 따로 받아
대기업 사원이었던 최모(67)씨는 20년 전 미국 현지 법인에 7년간 근무하면서 미국연금(OASDI)에 가입했지만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채우지 못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10년을 못 채우면 이미 낸 돈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과 맺은 사회보장협정(2001년)에 따라 양국 합쳐 10년 넘게 연금을 냈으면 미국에 연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지난해 미 사회보장청에 연금을 신청해 현재 월 920달러(약 104만원)를 받고 있다. 미국은 배우자에게 연금액의 절반을 더 주기 때문에 그의 아내가 67세가 되면 부부 합산 연금액은 1300달러(약 147만원)가 된다. 정씨는 귀국 후인 1988년 국민연금에 가입해 현재 월 120만원을 받고 있어 양국에서 연금으로 월 224만원을 받고 있다.
전직 은행원 이모(66)씨는 독일에 3년(1985~1987년) 파견 간 기간 중 독일 연금에 가입했지만, 최소 가입 기간인 5년을 채우지 못해 낸 돈을 되돌려받지 못하고 귀국했다. 이씨는 국민연금에 19년간 가입해 60세부터 월 99만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2003년 사회보장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연금을 신청해 작년부터 월 150유로(약 19만원)를 받고 있다.
◇해외 파견 때 보험료 면제도
국민연금공단은 외국과 맺은 사회보장협정에 따라 연금 가입 기간 합산이나 보험료 면제를 신청한 사람이 1999년부터 지금까지 5만여 명에 이른다고 3일 밝혔다. 일부 국가는 외국 체류자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보험료 면제 조항을 두고 있다.
김경식 국민연금공단 국제협력센터장은 "협정 맺기 전 외국에 파견 갔던 회사원과 이민자까지 합해 양국(한국과 체류국)에서 혜택을 보게 되는 대상자는 10만여명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외국 연금을 받게 된 이는 1998년 966명에서 2010년 1513명, 작년에 2827명으로 늘어났다. 미국이 2207명으로 가장 많고 캐나다 254명, 독일 171명, 프랑스 160명 등이다.
한국은 1999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미국·호주·캐나다 등 20개국과 가입 기간 합산 협정을, 일본·영국·중국 등 9개국과는 파견 근로자들의 연금보험료 납부 면제 협정을 맺었다. 김영일 연금공단 국제협력부장은 "한국은 아시아에서 사회보장협정을 가장 많이 맺은 국가이며 일본은 15개국, 필리핀은 9개국, 중국은 2개국에 그친다"고 말했다. 일본은 최소 가입 기간(25년)이 길어 실효성 때문에 협정을 맺지 않았으나 최근 그 기간을 10년으로 줄여 재협상을 추진 중이다. 중국도 성(省)마다 보험료율 등이 달라 가입 기간 합산 협정을 맺지 않았다.
◇이민 가면서 국민연금 묻어둔다
지난달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김모(56·자영업)씨는 국민연금공단에 9년간 낸 돈을 찾지 않았다. 납부액은 총 2699만원, 일시금을 받을 경우 이자까지 3138만원이었다. 그는 일시금을 타기보다 양국 합산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채워 사회보장협정 혜택을 받기로 했다. 김씨는 62세가 되면 국민연금공단에서 월 26만원, 미국에선 67세부터 연금을 받게 된다.
백경희 국민연금공단 차장은 "매년 이민자가 2만여 명에 이르는데 일시금을 받는 경우가 20~30%에 불과해 앞으로 양쪽 국가에서 연금을 받는 사람이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