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5(서울 ADEX 2015)' 미디어데이에서 F-22랩터 전투기가 시범비행을 하고 있다.

햇볕을 받아 표면이 반짝이는 회색 기체는 굉음을 내며 수직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수백m 이상 올라가더니 속도를 줄이며 공중에서 기체를 지면과 수평으로 유지했다. 그 상태로 잠시 정지하는가 싶더니 기체가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공군 조종사는 “페달 턴(Pedal Turn) 이라는 비행 기술”이라며 “이런 비행은 F-22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의 전투기 미(美) F-22 '랩터'가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개막일(20일)을 하루 앞둔 19일 성남 서울공항 상공에서 공중 기동시범 비행을 했다. F-22가 우리나라에서 공개적으로 시범 비행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국방성은 서울 ADEX에 F-22 2대를 참가시켰다. 이중 1대가 이날 시범 비행을 했다.

F-22는 이륙 직후 곧바로 기체를 수직으로 세워 급상승했다.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이 비행장을 가득 채웠다. 하늘높이 까마득히 올라갔다가 지상 근처로 다시 내려온 F-22는 다시 고속으로 치솟았다. 이번에는 속도를 천천히 줄이더니 잠시 정지했다가 상승자세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다. 태일 슬라이드(Tail Slide)라는 비행 기술이다.

3만5000파운드의 추력을 지닌 엔진 2개를 장착한 F-22이기에 가능한 비행이다. 2만4000파운드 엔진 2개를 장착한 우리나라 F-15K 전투기보다 추력이 훨씬 높다. 엔진 추력이 약한 일반 전투기가 태일 슬라이드 기동을 하면 그 상태에서 엔진이 꺼져 버려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F-22는 헬기처럼 저속 비행을 했다. 공군 관계자는 “지상에서 바라봐서 그렇지 현재 F-22는 시속 160㎞로 비행중”이라고 했다. 최신형 전투기의 최저 비행 속도는 시속 200㎞라고 한다. 느릿느릿 비행하던 F-22가 갑자기 쌩 하고 사라졌다. 안내방송에선 “시속 1100㎞까지 가속”했다고 설명했다. F-22의 최고속도는 마하 2.25(음속의 2.25배)다.

F-22는 360도를 두 번 회전한 뒤 수직으로 한 번, 수평으로 한 번 급히 기동하는 후버 피치(Hoover Pitch) 비행을 선보였다. 마치 전자오락에 나오는 전투기처럼 수평으로 빙글빙글 돌고 급선회를 했다. 이같은 비행이 가능한 까닭은 추력편향(推力偏向) 엔진 때문이다. 미사일에 주로 쓰이는 이 장치는 엔진 분사구(노즐)가 추력방향의 각도를 상하로 변경해 비행자세를 순간적으로 올리거나 내릴 수 있다.

F-22가 세계 최강인 이유는 이같은 기동성 외에도 적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스텔스 성능에 있다. 적 레이더망을 뚫고 적진에 진입해 적의 지휘부를 유도미사일과 정밀 유도폭탄으로 공격할 수 있다. 김정일과 김정은 모두 한미연합훈련에서 F-22나 스텔스 전폭기인 B-2가 뜨면 극렬하게 비난 공세를 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F-22는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미사일과 폭탄을 기체 안에 넣어 놨다가 필요할 때 뚜껑을 열어 발사한다. 이를 내부무장창 시스템이라고 한다. F-22는 이날 비행을 할 때 배를 드러내 보이며 무장창을 한 번 열었다 닫는 시범도 관광객들에게 선보였다.

‘하늘의 제왕’ F-22는 땅에서도 왕 대접을 받았다. F-22 2대는 다른 전투기와 거리를 두고 비행장 한 쪽 끝에 특별 전시됐다. 바리케이드로 빙 둘러쳐져서 외부 출입이 통제됐다. 관람객들은 약 30m 떨어진 곳에서 F-22 기체를 지켜봐야 했다. 미 공군은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 병력까지 배치했다.

미국은 전략 무기’를 일반에 공개할 때 이같은 철통 보안을 유지한다. 1대당 가격이 1억5000만 달러(2009년 기준)로, 우리 돈으로 1680억원이지만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살 수가 없다. 미 정부는 F-22를 전략 무기로 분류해 다른 나라에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F-22는 보급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기가 우리 공군이 차기 전투기로 40대를 도입하기로 한 스텔스전투기 F-35다. F-22는 실전에 투입된 지 10년이 지난 전투기지만 워낙 성능이 뛰어나 현재까지도 전세계에 적수가 없다. 미 정부는 F-22가 워낙 고가인데다 유지보수비용이 많이 들자 2011년 생산을 중단했다. 대신 상대적으로 생산 및 운용·유지비가 적게 드는 F-35를 개발해 생산중이다. 이날 비행을 마친 F-22 시범 비행팀 조종사 존 커밍스 소령은 “F-22나 F-35는 주기적으로 함께 비행을 한다”며 “두 전투기 모두 스텔스 전투기이기 때문에 비슷한 전술을 구사한다”고 말했다.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은 서울 ADEX에서 한반도 배치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유도탄 모형을 전시했다. 차기 전투기 F-35 모형도 선을 보였다.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와 KF-16도 미국에서 사들인 기체들이다. F-22 전투기 시범비행을 할 때 방송 아나운서가 “영공방위를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 국군과 미군의 노력을 기억해주십시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F-22는 일반관람일인 24일 오전 11시5분, 25일 오후 4시15분 각각 20분씩 시험비행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공군의 곡예비행팀 ‘블랙이글스’ 곡예비행도 매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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