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에 합의했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일회용 전화번호'를 활용해 해당 지역 유권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 또는 경선을 실시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정당 후보를 뽑는 것이다. 안심번호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가상의 전화번호다. 이동통신회사에서 무작위로 번호를 생성하며 '0505'로 시작되는 앞자리 숫자에 7자리 번호가 붙어서 '0505-×××-××××'의 형태를 갖는다. 지금도 온라인 거래에서 자신의 전화번호 노출을 꺼리는 고객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개인 정보 노출 피할 수 있어

한 정당이 서울 종로구에서 내년 총선에 출마할 후보자를 공천할 때 1000명의 선거인단을 구성해 경선으로 뽑는다고 해보자. 이 정당은 우선 중앙선관위를 거쳐 이동통신사업자에게 안심번호를 요청한다. 경선 선거인단의 20배(이 경우엔 2만명)까지 번호 요청이 가능하다. 통신사업자는 종로구에 주소를 둔 유권자 중 2만명을 성별·연령별 비율을 최대한 실제와 맞춰서 무작위로 추출한다. 정당에는 이 번호만 제공하게 되며, 성별이나 연령, 주소 등은 제공하지 않는다. 선관위 관계자는 29일 "전화를 하는 쪽은 받는 실제 사람(전화번호)이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게 된다"고 했다.

정당마다 경선 방식은 달라

안심번호를 제공받을 때까지는 방식이 같지만, 그 이후에 이 번호를 어떻게 사용해서 경선을 하는지는 각 당의 방식이 다르다. 새누리당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은 "우리 당은 2만명이든 3만명이든 안심번호 전체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심번호 중에서 300~1000명의 선거인단을 뽑아내 선거인단 투표로 공천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2만명에게 전화를 돌려 '선거인단에 참여할 거냐'고 물어 '참석하겠다'는 사람 1000명을 선거인단으로 구성한 뒤, 이들이 투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는 제외한다. 다만 향후 정개특위 협의에 따라 여야의 후보 선출 방식이 바뀔 가능성은 있다.

◇동원 선거, 여론 왜곡 줄일 수 있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실시하게 되면 조직 동원과 여론 조작 가능성이 줄어든다. 과거 경선에서는 후보자가 투표 현장에 자기 지지자들을 대거 동원하는 조직 동원이 많았었다. 하지만 유권자의 신분을 모르는 안심번호로 선거인단을 모집하면 동원 선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또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안심번호를 이용하면 여론조사의 대표성과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며 "전화번호 주인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여론조사 샘플 구성 단계부터 왜곡 여지가 줄고, 휴대전화 간 착신 전환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긴 어렵다"고 했다.

또 그동안 지역구 총선 후보 공천 때는 활용하지 못했던 휴대전화 여론조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지금까지 휴대전화 여론조사는 전국 단위에서는 가능했지만 지역구 후보자를 뽑을 때는 활용하지 못했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를 통신 회사가 제공할 수 없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역선택을 막는 건 한계

하지만 한계도 있다. 우선 경선 참여자가 의도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은 상대 당 후보를 지지하는 '역(逆)선택'을 막기가 어렵다. 안심번호에 개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전화를 받은 사람이 어느 당 지지자인지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지지자가 일부러 새정치연합 경선에 참여해 약한 후보에 투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휴대전화가 없는 유권자는 참여할 수가 없고, 상대적으로 노년층보다 젊은 층의 참여율이 높을 수 있다는 점도 단점이다. 새정치연합 한 의원은 "실제 본선에서는 노년층의 투표율이 더 높은데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반대여서 본선 경쟁력 없는 후보가 당선되는 부작용을 부를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일각에서는 안심번호의 내역을 갖고 있는 이동통신사에서 정치권으로 정보가 유출될 경우 또 다른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민공천제

정당이 대통령 후보나 국회의원 후보 등 공직 후보를 선발할 때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해 선출하는 방식. 당내 실력자들의 영향력과 관계없이 국민이 바라는 인물을 공천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정당의 존재 의미가 줄고 책임정치 실현이 어려워진다는 면도 있다. 국민공천제는 어떤 특정한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는 100% 유권자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한다. 반면 새정치연합이 추진하는 '국민공천단 공천'은 1000명 정도의 공천단을 모집한 뒤 그들의 결정에 따르는 방식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직접 투표가 아닌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정하는 것으로, '변형된 국민공천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