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여·30)씨는 지난 13일 서울의 한 경찰서 '서포터즈' 단체 채팅방에서 탈퇴했다. 이 채팅방은 지역 주민과 경찰 등 2400여명이 각종 치안·교통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에 한 일반인 회원이 올린 '라면과 여자의 공통점은…'이라는 글을 읽고 최씨는 더는 참지 못했다. 최씨는 "경찰 서포터라는 사람들이 시시덕거리며 음담패설을 주고받는데, 따져봐야 '웃자고 올린 글에 유난 떤다'고 할까 봐 조용히 탈퇴해버렸다"고 했다.
소통과 친목 도모를 위해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SNS 단체 채팅방에서 성희롱이 횡행하면서 여성들이 끙끙 앓고 있다. 직장 안에서라면 징계감이 되기 십상이지만 친목 성격의 단체 채팅 창에 올라온 성희롱 글에는 여성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남성 회원들이 올린 게시글이나 사진, 동영상에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느껴도 특정인을 지목해 올린 게 아니라서 혼자서 불쾌감을 표출했다가는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받을까 봐서다.
채팅방 성희롱은 얼굴을 아는 사이에서도 빈발하고 있다. 직장인 이모(여·33)씨는 "최근 입사 동기들의 단체 채팅방에 자꾸만 여자 연예인 노출 사진을 올리는 남자 동기가 있어 불쾌하다고 말했더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며 "여자 동기마저 '남자 동기가 채팅방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 것 같은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해 괜한 짓을 했다 싶었다"고 했다.
자전거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직장인 박모(29)씨는 채팅방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지난달 동호회를 나왔다. 박씨는 "'외롭다'면서 한밤중에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사진을 동호회 채팅방에 올리는 한 남성 탓에 여성 회원 모두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며 "이를 보다 못한 한 남성 회원이 '뭐 하는 거냐'며 화를 내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더는 그 회원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동호회를 나왔다"고 했다.
채팅방 성희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건 여성뿐 아니다. 대학 동문끼리 만든 남성 전용 단체 채팅방에 가입해 활동 중인 윤모(31)씨는 "여자 회원이 없다고 남자 선배들이 경쟁적으로 야한 동영상을 채팅방에 올리는데, 원치 않는데도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봐야 하니 괴롭다"고 했다. 신지영 한국여성상담센터장은 "사회적 관계가 깨질 것을 우려해 피해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는 채팅방 성희롱 피해자들이 많다"고 했다. 채팅방 성희롱도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