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73)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정치생명이 걸린 재판을 맡게 된 김용덕(58·사법연수원 12기) 대법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7일 박 의원의 저축은행 금품수수 사건 상고심을 애초 주심 재판관이던 권순일 대법관에서 김용덕 대법관으로 재배당했다. 권 대법관이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 쌓은 박 의원과의 친분 때문에 재판 진행이나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야당 거물 정치인에 대한 사법부 최종 판결을 책임 질 대법원의 ‘믿을맨’ 김 대법관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경기고 전성기를 대표하는 '수재 중의 수재'

“당시 서울 시내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 중에서 ‘김용덕’이란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김 대법관은 학창 시절부터 ‘전국 1등’으로 널리 알려진 학생이었다. 모의 고사를 보면 전국 1등을 도맡아 하니 주변에서 ‘누가 공부 잘해?’라고 물으면 ‘김용덕’이라는 대답이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험생들의 전설적인 인물이 사법부 최고 자리까지 올랐다. 김 대법관의 경우는 ‘판사는 공부를 잘했다’는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김 대법관은 1970년대 고교 비평준화 시절 최고 명문 고교로 꼽히던 경기고에서도 내내 1등을 놓치 않았다. 그가 재학 중 일 때 라이벌 서울고가 단 한 번도 경기고를 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1976년 경기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법관이 봐도 얄미울 정도인 ‘초 엘리트 법관’

사법연수원 역시 수석으로 졸업한 김 대법관은 군 법무관으로 복무를 마치고 1985년 서울민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에서 판사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김 대법관은 법원에서도 ‘탄탄대로’를 걸었다. 일선 판사로서 재판에 열중하던 그는 판사 연수 시절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LL.M) 과정을 마쳤다. 법원행정처 심의관,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2005년 대법원 수석재판 연구관으로 발탁, 4년 3개월 동안 최장수 수석 연구관으로 일했다.

한 판사는 “김 대법관이 처리하는 업무량이 워낙 많아, 함께 일하는 후배들이 굉장히 버거워했다”며 “다들 김 대법관이 대법관으로 임명되면 재판연구관들이 꽤나 고생하겠다고 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대법관은 2011년 2월부터 법원의 안방 살림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하다 2012년 최고 법관인 대법관에 임명됐다.

◆별개 의견, 소수 의견 내는 원칙주의자

김 대법관의 판결 스타일은 합리적 보수에 바탕을 둔 원칙주의자라는 평가가 대세다. 법리적인 부분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아 김 대법관은 때때로 별개 의견이나 소수 의견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다는 것이다.

김 대법관은 실제 검찰의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에 대한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별개의견을 냈고,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는 소수의견을 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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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법관은 대법원 재판연구관들 사이에서도 인기 좋은 대법관으로 손에 꼽힌다. 대법원 내부 관계자는 “일단 대법관 사이에서도 ‘오피니언 리더’격으로 알려져 있다”며 “평소 대화를 통해서도 배울 부분이 많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법원 내 대표적인 학술단체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상사법무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민법 주해', '주석 신민사소송법', '주석 민사집행법' 을 공동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