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덕렬 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 소장

40대 중반의 유능한 중소기업 사장이 있었다. 그는 매우 똑똑한 사람으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뛰어났다. 판단력과 결단력 역시 탁월했다. 평소 산 타기를 좋아했던 그는 우리나라의 높은 산을 비롯해 세계적인 명산을 오르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는 어느 해에 고도가 4700m인 외국의 유명한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속도 조절에 실패했는지 평소보다 많이 피곤했고, 결국 다음 날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 내려왔다. 그다음부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그의 성격은 바뀌어 있었다. 회사 업무상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유부단해지고 의욕을 잃었다. 나아가 회사와 개인의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거의 소실됐던 것이다.

뇌 MRI 사진을 찍어보니 전두엽과 연결된 기저핵의 일부에 손상이 있었다. 저산소증으로 생긴 것이었다. 다행히 손상 부위가 작아서인지, 약물 치료와 운동 치료를 받았다. 부인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수년 후에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호전됐다.

인간의 전두엽, 그중에서도 앞쪽인 전(前)전두엽에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기획센터가 있다. 따라서 이곳이 손상되면 위의 사례와 같이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환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대다수 정상인이 그런 환자처럼 살고 있다는 점이다. "당신의 올해 (또는 이번 달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갑자기 질문하면 "글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단기건 장기건, 삶의 계획이 없으면 우리 뇌는 마치 주인 없는 회사의 직원처럼 하릴없이 놀게 된다.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첫 번째 단계는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그러면 전두엽이 지휘부가 되어 뇌세포가 힘차게 달려나간다.

목표가 없는 뇌는 죽은 뇌다. 왜 이렇게 심한 말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회사의 사장에게 "올해 귀사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글쎄요"라고 대답하면서 골프만 치러 다닌다면 그 회사는 죽은 회사와 다름없다. 목표가 없으면 사원들은 갈팡질팡하거나 일을 하지 않고 쉬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뇌 속에는 뇌세포가 천억개 있는데, 당신이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뇌세포는 그저 놀게 된다. 반대로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하면 전두엽에 있는 내 머릿속 CEO가 깨어날 뿐만 아니라 뇌세포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 뇌 세포들의 수상돌기에 가지가 생겨나서 서로 긴밀하게 대화를 하고, 뇌 속 깊숙이 내재한 신경줄기세포가 활성화되면서 필요한 곳에 신경세포를 나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제 이번 달의 목표, 올해의 목표, 5년 후의 목표, 10년 후의 목표를 글로 써 보아야 한다. 목표는 작아도 좋다. 그다음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건지겠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제 9월 초이고 연말이 머지않았다. 이번 달, 이번 연도에 꼭 해야 할 일, 이것만큼은 하늘이 무너져도 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직접 실험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