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종로구 서울 글로벌 센터 6층. 넓게 열린 공간에서 외국인들이 노트북과 카메라 등 각종 장비를 갖추고 일을 하고 있다. 각종 일간지와 영자지가 깔려있는 책상에 둘러 앉은 서너명의 외국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 의견을 나눴다. 10여개의 스터디룸과 같은 사무실 공간에도 몇몇의 외국 청년들이 모여있었다.
도서관과 사무실, 카페를 하나로 합쳐 놓은 듯 한 이 공간은 서울시에 거주하며 창업을 준비하는 외국인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곳이다. 한 달 평균 220건의 창업 상담을 받는다는 서울 글로벌 센터는 2009년부터 260개의 창업 기업을 배출했다.
단 두 달 만에 4만6000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한 인기 유투브(YouTube) 채널 ‘Korea Junkies(코리아 정키스)’의 운영자 빌루스 바실리우스카스(Vilius Vasiliauskaus·사진)는 서울 글로벌 센터의 인큐베이션 오피스에서 창업을 준비 중이다.
빌루스는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버밍엄 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한국에서의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한 해였다”면서 “영국과 리투아니아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해 얘기해주다가 유투브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올릴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유투브 채널 ‘코리아 정키스’는 ‘한국에 빠진’, ‘한국에 미친’, ‘한국을 좋아하는’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외국인 시각에서 본 한국인들의 특징이나 한국의 고유 문화를 꽁트 형식으로 만들어 공감을 자아내는 영상들을 제작해 올린다. 가장 인기 있었던 영상들 중에는 ‘외국인이 본 한국인 여자친구 유형 10가지’와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하는 전형적인 헛소리’ 등이 있다.
지난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 글로벌 센터에서 ‘커피 업(Coffee Up)’이라는 앱을 개발 중이다. ‘커피 업(Coffee Up)’은 프랜차이즈나 체인점이 아닌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커피숍들을 서로 연결해준다. 그리고 한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인디 커피숍의 종이 스탬프 쿠폰 대신 커피 업으로 연결된 모든 커피숍에서나 사용 가능한 전자 스탬프 쿠폰을 제공한다.
그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인디(indie) 커피숍들은 스타벅스나 카페베네와 같은 큰 커피 체인점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작은 커피숍들도 큰 커피 체인점에 대항할 수 있도록 이들을 연결해 주고 사용자들에게는 더 싼 값에 인디 커피숍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미 포화 상태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국내 커피숍 시장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빌루스는 “한국인들은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스마트폰 사용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사업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최근 정부의 G-창업프로젝트에 참여해 상금을 획득하기도 했다. G-창업프로젝트는 우수한 아이디어나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금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 중·장년층의 예비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500만원에서 최대 1500만원의 창업지원금을 차등 지급한다.
그는 “한국에는 너무 많은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영국에도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고 구글에서 운영하는 구글캠퍼스도 있지만 무료로 제공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스위스에서 창업을 준비 중인 그의 여동생도 무료 창업 지원 서비스가 있다는 것에 놀라워 했다고 그는 말했다.
빌루스는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홍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유투브 채널을 꼽았다. 그는 “창업을 위해 유투브 채널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유투브 채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충분히 영향력 있는 사업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을 이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유투브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해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적지 않다.
78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투브의 원조 뷰티 스타 미셸 판(Michelle Phan)은 자신의 화장법과 뷰티 노하우 영상이 인기를 끌자 자신이 선택한 화장품들을 박스에 넣어 판매했다. 그러던 지난 2013년 8월에는 자신만의 코스메틱 브랜드 '잎시(Ipsy)'를 유명 프랑스 브랜드 로레알과 함께 론칭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잎시는 1년 매출만 1억달러(약 1173억원)에 달한다. 그는 유투브 채널의 광고료만으로도 연 16만3000달러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브랜드 샤오미와 원플러스원(OnePlus One)도 광고 없이 유투브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홍보를 통해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빌루스는 “스타트업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1000명의 고객을 모으는 것”이라면서 “4만 6000명 이상의 구독자들에게 앱을 소개하면 최소 1000명의 사용자 기반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글로벌 센터에서 ‘커넥팅코리아(Connecting Korea)’라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인 멕시코의 하비 말도나도(Javi Maldonado)도 남미권에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영상으로 유투브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물론 SNS가 사업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내가 유투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영상을 올린 이후로 남미에서 한국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나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의 스타트업 지원 제도에 대해서도 “물론 집에도 작은 오피스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지만 나와서 일할 수 있는 공간과 비슷한 처지의 예비 창업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큰 도움이 된다”면서 “멕시코에는 외국인을 위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년 정도 된 ‘커넥팅코리아’는 한국 기업들 중 남미시장이나 스페인어권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을 돕고있다. 그는 멕시코에 투자하거나 멕시코에서 사업을 하려는 한국 대기업의 큰 프로젝트에도 참여 중이다. 실제로 그의 기업은 “1년 만에 흑자를 내고 있다”고 말도나도는 말했다.
강민정 서울글로벌센터 책임은 이 외에도 성공적인 스타트업 사례로 ‘애스크아줌마(Ask Ajumma)’를 꼽았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주는 서비스다. 한국에서 식사를 주문하는 법, 식당 정보, 한국에서 유명한 온라인 쇼핑몰, 길 찾기 등 생활의 정보를 묻는 외국인에게 실시간으로 답을 준다.
그는 “애스크 아줌마의 경우 사업이 꽤 성공적이어서 사업을 시작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내국인 10명을 직원으로 고용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외국인 창업을 지원하는 한 가지 이유는 내국인 고용 창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예비 창업자들은 서류심사와 면접 심사를 거쳐 1년 단위로 서울글로벌센터의 인큐베이션 오피스를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약 25개의 스타트업이 종각, 강남, 여의도에 있는 글로벌센터에 상주 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창업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기술이나 사업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시험대(Testbed)이기 때문이다. 워낙 경쟁이 심한데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모여 있는 탓에 ‘한국에서 성공하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면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말도나도는 “서울글로벌센터 출신 중에는 첫 해에 7만달러(약 8200만원)를 잃은 창업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빌루스는 “한국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대기업에 뺏긴다는 고정관념도 있는데 그건 어느 나라에 가도 마찬가지”라면서 “한국인들이 창업에 소극적인 이유가 이런 창업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나 시각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