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영화처럼
영화필름현상소 보다봄bodaBom
우리가 흔히 쓰는 35mm 카메라가 영화 필름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출생의 비밀을 들은 기분이었다. 36컷 짜리 필름이 영화 카메라에서 단 몇 초 만에 찍혀버리는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그 반대로 영화 필름을 내 카메라에 넣을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은 해 본 적 없었다. 그저 이론상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칠 년쯤 전 한 현상소를 소개받았다. 영화 필름을 말아 판다고 했다. 현상도 그곳에서만 가능했다. 그곳에 가 필름을 사고, 다시 꼭 그곳에 가서 필름을 맡겨야 한다는 점은 영화 의 고독한 킬러의 여정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지방(이 있었다면) 닳도록 드나들던 충무로였지만 그곳에 그런 건물이, 그 건물에 그런 입구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입구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어둡고 가파른 계단도 영화에서나 나올 법 했다.
칠 년만에 다시 찾은 그곳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이 몇 년 째 그대로일 리 만무하지만, 내가 어제 필름을 맡겨두고 갔었던가 고민해야 할 만큼 공기마저 완벽히 그대로였다. 심지어는 그 오래 전 필름 맡기러 한 번, 찾으러 또 한 번 왔을 뿐인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삶은 모두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실은 영화가 모두 삶의 한 장면일 것이다.
보다봄bodaBom은 지금 건물 6층 옥탑에 있던 작업실 이름이었다. 개인작업실이었지만 직접 현상·인화하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기도 했다. 6층까지 올라가기 너무 힘들다는 청원에 4층으로 내려왔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벌써 십 년이 된 이야기다. “원래 흑백 작업만 하다가 컬러에 관심이 생겼어요. 영화 필름의 색감이 좋았는데, 영화 필름은 원래 영화 현상소에 가야만 현상을 할 수 있거든요. 다른 방법으로는 안 될까 해서 한 번 해본 거죠.” 일반적으로 영화 현상소는 롤 방식으로 필름을 현상하지만, 이곳에서는 직접 개발한 드럼 방식을 이용한다. “현상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는 원심력을 이용하는 드럼 방식이 좋아서 어떻게 해볼까 고민하다가 방법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예요.”
보다봄에서 판매하는 영화 필름은 네 종류로, KODAK vision3 250D, 100T, 500T와 흑백인 Double-X 400이다. 각각의 숫자는 필름의 감도, 숫자 뒤에 붙는 D는 일반 실외 광원daylight, T는 텅스텐tungsten을 의미한다. ECN-2 현상이라는 점 외에는 일반 필름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사용법이 특별하진 않지만, 조금 밝게 찍는 것이 약간의 팁이다. 250D 필름이라면 감도를 200으로 설정하기를 권한다. 기본적으로 조금 증감 현상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버석거리지 않고 딴딴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짧은 대화 중에도 몇몇의 손님이 오가며 대화가 끊겼다. 손님들은 접수 창에 아무도 없자 당연한 듯 기척도 없이 기다렸다. 인터넷에 있는 한 소개글에는 ‘주인장 아저씨가 가끔 전화를 안 받아요. 암실에 들어가시면.’이라 했다. 다들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현상이나 인화 작업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알아서 잘 기다려주신단다. 그래서인지 작은 접수 창 너머로 작업을 하는 공간이 보인다. 암실이라면 아무렴 침침하고 퀴퀴하며 여기저기 약품이 튀어있어야 제 멋이라는 생각은 그저 나의 게으름 탓이었다. 암실은 아늑했고 벽이 하얬다. 벽이 더러워지는 걸 쉽게 보기 위함이었다. “제가 깨끗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사진 하시는 분들은 먼지 하나, 스크래치 하나에 민감하기 때문에 암실은 깨끗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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