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바벨의 도서관'… 작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아르헨티나의 시인·소설가·비평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 ~1986)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고 자랐다. 보르헤스가 유년기를 보낸 집이 있던 구역 이름은 원래 '세라노'였지만 지금은 '카예 데 보르헤스(보르헤스 거리)'로 불린다.
보르헤스가 살았던 안초레나 거리에 있는 집은 보르헤스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보르헤스의 집필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그가 탐독했던 스페인어·영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백과사전이 그의 손때를 간직한 채 서가에 꽂혀 있다. 박물관의 벽은 전부 보르헤스 사진과 초상화로 꾸며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갈레리아스 파시피코백화점엔 '보르헤스 문화센터'가 들어 있다. 보르헤스의 사진과 그의 주요 작품에 실린 어록을 전시하고 있다. 보르헤스 전시관에서 눈길을 끈 것은 바벨의 도서관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상상한 그림 밑을 보르헤스가 애독한 책들이 받치고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일 것"이라고 한 보르헤스의 말도 적혀 있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틴 코안을 보르헤스 생가 부근 카페에서 만났다. 코안은 창작을 하면서 대학에서 보르헤스 문학을 강의한다고 했다. 그는 "보르헤스 책에는 문학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다"며 "인류의 신화와 종교·철학에 대한 기억을 담으면서 압축된 언어와 서술의 경제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중학교 때부터 보르헤스 문학을 배운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문화의 상징이다."
코안은 "보르헤스가 인터넷의 가상현실을 일찍이 예견한 작가"라고도 했다. 1940년대에 나온 보르헤스의 단편 중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꼽았다. 그 소설에선 '분산되고 수렴되고 병렬적인 시간들로 구성된, 점차로 커져 가는 시간의 그물망'이란 말이 나온다. 보르헤스가 인터넷의 과학기술을 발명하진 않았지만 그가 상상한 끝없이 갈라지는 정원의 미로(迷路)는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축소판이라는 얘기다. 그의 다른 단편 '알렙'에 나오는 모든 시·공간이 응축된 유리구슬이라든지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리티우스'에서 가상의 백과사전에 기재된 내용이 현실을 조금씩 지배해가는 것도 가상현실이 현실을 압도하는 인터넷 시대를 내다본 것으로 여겨진다.
보르헤스는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묘사했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不定數), 아니 아마도 무한수(無限數)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의 신비가 담긴 한 권의 책을 찾아서 인류는 그 도서관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지만 그토록 갈구하는 '절대의 책'을 찾지는 못한다.
보르헤스가 상상한 우주의 도서관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재현됐다고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블랙홀에 떨어져 헤매는 공간이 수많은 책꽂이로 이뤄진 '바벨의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놀란 감독은 원래 보르헤스 소설의 애독자였다. 그는 "예술과 과학, 예술과 수학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연결 고리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작가 보르헤스의 기막힌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밝혔다.
[시력 잃은 아르헨티나의 지성, 기억으로 쌓은 세계문학의 탑]
특히 그의 영화 '인셉션'은 보르헤스 문학의 모티브를 구체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꿈에서 꿈으로 이동하는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끝없이 갈라지는 이야기의 연속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놀란의 영화는 보르헤스의 창의성이 20세기 후반 서양 인문학과 예술에 미친 거대한 영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르헤스는 1960년대 이후 프랑스 철학과 미국 문학의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감을 불어넣는 '사상의 샘물' 역할을 했다. 놀란의 영화는 오늘날 보르헤스의 창의성을 대중적으로 재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보르헤스는 '인간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에 새 해석을 제시했다. 보르헤스 문학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문학은 없다. 모든 책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호 텍스트'다. 작가와 독자는 텍스트를 매개로 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를 읊는 사람은 누구나 셰익스피어다. 인간은 허구의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허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허구다. 우리는 어둠을 견디기 위해 꿈을 꾼다. 우리는 꿈을 꾸지만 누군가의 꿈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위대한 작가는 후배 작가들의 글 속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나 영생을 누린다. 작가는 누구나 앞선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기에 독창적인 그 누구도 아니지만, 오히려 아무도 아니기에 죽지 않는 사람이 된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냈다. 보르헤스가 지팡이를 쥔 채 벤치에 앉아 있는 형상을 묘사한 동상이 도서관 정원에 있다. 보르헤스는 도서관장에 임명됐을 때 사실상 시력을 상실해가는 상태였다. 집안 유전병 때문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시력이 약했는데도 책에 파묻혀 살았다. 아홉 살 땐 영어 동화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신문에 발표한 어학의 신동이었다. 읽을 수 있는 책은 다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장서를 거느린 도서관장이 됐을 때 시력을 잃어가자 그 심경을 시로 남겼다. 그는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아이러니"라며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숱한 책을 음미했고, 구술과 강연으로 집필 활동을 계속해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물은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 2000년에 문을 연 대형 서점 '엘 아테네오'다. 오페라 극장의 객석과 발코니를 전부 책꽂이로 채웠다. 보르헤스는 살아서 이 아름다운 서점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상상한 바벨의 도서관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웅장한 서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엔 주민 10만명당 서점이 25곳이나 있다. 세계에서 서점이 가장 많이 밀집한 도시로 꼽힌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 이후 국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정도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책을 사랑하기에 다양한 서점이 성업 중이다. 그 도시는 보르헤스의 고향이자 그가 상상한 책의 낙원이다.
[살아있는 격정, 그리고 시간이 멈춘 도시를 만나다 ]
[[문호의 고향을 찾아서] <2> '픽션들' 보르헤스]
그는 5개 언어 능통, 죽기 전 아랍어도 배워
마리아 코다마(78·사진)는 보르헤스의 비서로 일하다가 1986년 보르헤스가 87세로 타계하기 직전에 결혼했다. 일본인 부친과 독일인 모친 사이에 태어난 코다마는 보르헤스보다 38년 어린 제자이기도 했다. 코다마는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르헤스 국제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상을 떠난 보르헤스의 마지막 나날은 어땠나.
"그는 영어를 비롯해 5개 외국어에 능통했다. 죽기 전까지도 외국어 공부를 좋아했다. 제네바에서 내가 아랍어 교수를 불러 개인 교습을 받기로 하자 보르헤스도 함께 수업을 들었다. 아랍어 교수는 "보르헤스가 마지막으로 배울 언어가 아랍어라니…"라며 감탄했다. 시력을 잃은 보르헤스는 내가 손바닥에 아랍어 문자를 써주는 것을 따라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
―남편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그는 죽음이란 성스럽게 새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고 여겼다. 보르헤스는 불교의 윤회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묘비명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묘비 뒤에는 옛날 바이킹이 타던 배가 새겨져 있다. 그 배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그의 창의성은 무엇이었나.
"보르헤스는 독특한 천재였다. 천재는 역사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다."
―보르헤스 책은 몇 개 언어로 번역됐나.
"아마 30개 언어로 번역됐을 것이다. 최근엔 터키어와 아르메니아어로도 번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