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수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13년 불구속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게 된 A씨는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를 선임했다. 올해 초 법관 정기 인사로 재판장이 바뀌자, A씨는 새 재판장과 고교 동기인 변호사를 또 선임했다. 하지만 A씨는 최근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A씨는 재판장과의 ‘연고’를 고려해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법조계에는 재판부와 ‘연고’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유리한 편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법원이 이런 인식을 해소하고 재판에 대한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적접 나섰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8월 1일부터 10개 형사합의부에 접수되는 사건에 대해, 변호인이 재판장 또는 재판부 소속 법관과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을 경우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하겠다고 20일 밝혔다.
현재 법원은 재판부 소속 법관과 친족 관계인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을 재배당하고 있다. 최근 미국계 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낸 가처분 사건의 항고심도 재판부가 변경됐었다. 이 사건이 처음 배당된 재판부 소속 법관의 배우자가 이 사건을 수임한 로펌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또 재판 예규에 따라 재판부 소속 법관과 개인적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될 경우 재배당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개인적 연고 관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는데다, 사건을 재배당받는 재판부의 업무가 늘어나 ‘연고 관계’에 따른 재배당은 많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연고 관계 기준을 구체화 해, 이에 따른 재배당을 활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이번 조치는 ‘전관예우’ 등 변호사와 판사간 개인적 연고 관계에 따른 불공정 관행이 여전하다고 믿는 법조계 안팎의 우려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법원 나름대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법조계에선 재판부와 일정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는 23일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리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재판장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 동기 변호사를 선임했다. 홍 지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윤 전 부사장은 이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이달 초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 부터 ‘연고 관계 변호사 선임 사건 재배당’을 준비해 왔으며, 형사 법관들의 수 차례 회의를 걸쳐 이 같은 기준을 마련했다. 단, 피고인이 여럿인 사건에서 일부만 재판부와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 선임된 경우, 이미 심리가 상당히 진행된 경우, 재판 지연 또는 재판부 변경 목적으로 일부러 연고 관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 등에 대해선 재배당을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