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살인마

데이비드 버스 지음|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1만5000원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

이 충격적인 주장을 접한 건, 6년 전 여름 어느 밤이었다. 귀밑때기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떨떨했던 기억이 있다. 살인을 찬양 고무하는 책인가, 잠시 의심했던 기억도 난다.

그 무렵 내 책상에는 살인에 관련된 온갖 책과 자료들이 교도소 담장만큼이나 높게 쌓여 있었다. 사이코패스 혹은 프레데터(포식자)라고도 불리는 별종들에게 한창 홀려 있던 참이었다. '이웃집 살인마'는 그 담장 밑에 깔린 채 잊혀가던 책이었다.

실토하자면, 그때만 해도 데이비드 버스가 진화심리학자라는 걸 몰랐다. 진화심리학 자체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제목과 표지에 낚여 사들인 책에 불과했다. '섹시한 옆집 오빠가 알고 보니 살인마였다' 유의 이야기려니 하고. ('아찔한 금발미녀' 표지로 장르를 교란한 출판사는 반성해야 한다)

책을 읽게 된 건, 밤마다 집 안을 무대로 '우다다 놀이'를 하던 피 끓는 고양이, '나옹이' 덕택이었다. 녀석은 모두가 잠든 틈을 타 내 책상 위를 날다가 교도소 담장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그 난장판을 정리하던 와중에 '아찔한 금발미녀'를 보게 되었고, 무심코 펼쳤다가 앉은 자리에서 밤을 새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잇몸이 근질근질하고 손이 벌벌 떨리는 흥분과 눈이 활자를 쫓아가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조급증을 맛보면서.

정유정·소설가.

"살인은 그 자체로 훌륭한 생존 전략이다." (화내지 마시라. 여기에서 '훌륭한'은 도덕적 관점이 아닌, 진화적 관점에서 사용된 단어다. 우리의 유전자는 도덕적이지 않고, 진화는 도덕적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알려져 있다시피, 진화의 목적은 종족 보존과 개체 번식이다. 이에 반하는 것들은 도태되고 기여하는 것들은 진화한다. 그러므로 '훌륭한'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가성비가 높은'과 비슷한 말이겠다.)

데이비드 버스는 서두에서 던진 이 뜨거운 화두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명쾌하게 풀어간다. 더 많은 자원을 얻고, 더 높은 지위를 갖고, 명예를 지키고, 위험한 적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방어하는 데 살인이 훌륭한 대응책이었기에 진화되었음을 조목조목 증명해 보인다. 우리가 진화의 산물이라는 걸 상기시킨다. 읽는 자의 불쾌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에는 살인자의 형질이 기록돼 있다고 선언한다.

그의 주장은 충격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살인을 이러한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는 게 놀랍다. 그러나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 내면의 어둠, 본성의 냉혹한 일면을 이해하는 데 유효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래의 질문들에 근원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인간은 왜 나쁜 짓을, 그중에서도 최고로 나쁜 짓인 살인을 저지르는가. 열 받아서, 미쳐서, 교육이 부족해서, 성장환경이 나빠서 등등의 이유로 설명할 수 없는 살인은 왜 일어나는가. 왜 연쇄살인범의 사냥감은 대부분 여자인가.

여기서 조언 하나. 책을 읽는 동안, 존엄한 인간, 혹은 도덕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잠시 접어두시길 권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짐승' 중 하나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는 말과도 같다. 세계와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만하면 불편함 혹은 불쾌함을 감수하고라도 한 번쯤 도전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