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3세인 당리스와렌 비그네시와리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오늘 하루 살아가는 일만 해도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동부 해안가 바하라이 지역에 살고 있는 그녀 가족은 2006년 내전 당시 집과 재산을 모조리 잃었다. 거리엔 밤낮으로 총탄이 날아다녔다. 비그네시와리 가족은 보행이 불편한 할머니를 작은 수레에 태우고 이틀 밤을 꼬박 달려 인근 난민 캠프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헤어진 오빠 행방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1년간 난민들로 복작거리는 캠프를 전전하다가 이듬해가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진 돈 한 푼 없었다. 밭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었다. 국제 구호단체들에 의존해 그날그날 끼니 잇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집앞 텃밭에 가지·수박·고구마·호박·고추 등 갖가지 작물을 심고 매주 토요일마다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매달 1만루피(약 8만5000원)씩 번다. 덕분에 여섯 살짜리 아들 사자반의 미래를 위해 매일 100루피씩 저축도 할 수 있게 됐다. 2013년부터 바하라이에서 시행하기 시작한 친환경 농업 사업 덕분이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토질에 좋은 미생물 등을 활용해 땅의 지력(地力)을 높이는 농사 방법이다.
이곳에서 친환경 농업 열풍을 이끄는 주역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친환경 농업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보니 빈센트 바하라이 지역개발사업팀장은 2012년 한국에서 농사 교육을 받았다. 지역 자립을 위해선 새로운 농업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필수라는 생각에서였다. 더욱이 '새마을운동'으로 일어선 한국은 모범 사례였다.
"한국에서 다양한 미생물을 활용해 지력을 살리는 법, 수확량을 증대시키는 법에서부터 농촌 사회 리더로서 지역사회를 이끌고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주민들과 함께 찾는 방법까지 배웠습니다. 그때 경험이 지금 큰 도움이 됩니다." 현재 2만5000여 바하라이 주민 가운데 750가구가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화학비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든 점이 지역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오랜 전쟁 때문에 1971년까지만 해도 1t에 41루피였던 화학비료 가격이 지금은 1000루피 내외로 24배 이상 뛰었다. 대출을 받아 화학비료를 구매한 농부들이 수확량이 따라주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결과, 스리랑카 농민 자살률은 10만명당 55명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운 친환경 농법을 도입한 뒤에는 화학비료가 필요 없어 농민들 부담도 크게 줄었다. 최근엔 바하라이에서 시작된 친환경 농법이 인근 지역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스리랑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내전을 겪은 나라다. 소수인 타밀족이 다수족 싱할리족의 차별에 반발해 타밀 자치국가를 세우려 하면서 일어난 분쟁이었다. 1983년 시작된 전쟁은 2009년까지 26년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타밀반군의 거점 지역이었던 이 지역 농토는 거뭇거뭇 타들어갔다. 지금도 도로변 옆 밭엔 포탄에 그슬린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다. 주민 대다수가 농민이기 때문에 농토가 입은 타격은 치명적이었다.
불모지에 희망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한국월드비전이 친환경 농법을 이곳에 보급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엔 "화학비료도 안 쓰고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며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수확량이 늘어나자 하나둘씩 친환경 농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수확량이 늘어나자 농가 소득도 증대했다.
과거엔 수확량이 적어서 밭에서 기른 작물을 농민들이 자급자족하기에 급급했지만, 수확량이 늘어나자 농작물을 가공한 식품 가게를 차린 이도 생겼다.
타바라사 루크마니씨도 오랜 내전에다 2004년 바하라이 지역을 덮친 쓰나미까지 겪으며 농지와 어부인 남편이 생계 수단으로 사용하던 고기잡이 배까지 모조리 잃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립에 성공해 텃밭에서 거둔 작물로 만든 쌀과자 등을 파는 가게를 열었다. "아이가 다섯인데 형편이 어려워서 위의 두 명은 초등학교까지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젠 매달 2만5000루피 정도 수입이 생기니 그 밑의 아이들은 다 공부를 시킬 생각이에요. 한국이 저희 삶을 되찾아 준 셈이죠."
바하라이 시(市)가 속한 바티꼴라 지역 비스트로나다 링기스바라라자 농림부 부책임자는 "이제까지 우리는 전쟁으로 입은 피해에만 신경을 쓰느라 바빴지만, 이제는 조금씩 성장과 발전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도 원래 농업이 주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한국이 과연 언제 농업 국가였던가' 싶을 만큼 엄청난 산업 발전을 이뤘지요. 이제 스리랑카가 그런 꿈을 꿀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