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 전문가인 지인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주제는 '최적화'라는 단어의 본질적 차이. 자동차 10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와 차 한 대만 다닐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고속도로로 가면 10분씩 걸리지만 1대만 지름길을 이용하면 1분에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자동차 20대는 어떤 출근길을 선택해야 할까? '전체 최적화(global optimum)'라고 하는 수학적 답은 정해져 있다. 고속도로와 지름길을 골고루 나눠 이용하면 차 20대의 합친 출근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사회 전체의 최적화가 꼭 개인의 최적화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고속도로 운전자를 상상해 보자. 자신은 매일 10분 걸리는 길로 다니지만, 누구는 1분 걸리는 지름길을 이용한다. "그러면 나도 지름길로 가겠다!"고 생각한 운전자는 다음 날부터 지름길로 다닌다. 지름길이 막혀 이젠 1분 이상 걸리겠지만, 고속도로의 10분보다는 더 빨리 출근할 수 있다. 다른 운전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기에, 얼마 후 지름길은 꽉 막히고 운전자들의 합친 출근 시간은 늘기 시작한다. 각자 객관적인 개인 최적화를 추구한 결과 사회 전체의 비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어떻게 사회 전체를 위한 최적화된 선택을 유도할까? 독재 사회라면 전체 최적화된 선택을 강요하면 된다. 후기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반인플레이션 규정, 구소련의 '고스플란', 북한의 경제정책…. '인간의 본능과 개인의 이득을 무시한 전체 최적화는 불가능하다'는 역사의 교훈은 같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개인 최적화와 전체 최적화가 최대한 일치하도록 사회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개인 이득을 추구하는 이들의 합집합이 시장경제라는 전체 최적화 시스템을 탄생시켰듯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 2.0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