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피지 공화국의 첫 남자 간호사예요. 군대에서 근무하시며 병사들을 돌보셨지요. 할아버지는 항상 간호사의 보람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간호사란 직업은 저에게 소명(召命)이에요."
할아버지처럼 간호사를 꿈꾸는 피지 간호대 3학년 폐냐시 로키(Loki·21)씨는 "아이들과 금방 친해질 자신이 있기 때문에 소아과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로키씨처럼 간호사를 꿈꾸는 800여명의 간호학생이 서울에 모였다.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간호학생대회'에 참석한 이들의 피부색과 국적은 제각각이었지만, 간호사가 돼 봉사하겠다는 의지는 한결같았다.
캐나다 앨버타대 간호학과 3학년생 페이슬리 사이메누크(Symenuk·22)씨는 "대학을 다니다보면 친구들이 친구 관계나 성적, 경제적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며 "간호학적 지식뿐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마음을 갖춘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 감비아의 국립간호조산학교 학생 라민 은지에(Njie·37)씨는 "간호사는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직업"이라고 했다. 은지에씨의 고향인 파라토 마을은 병원을 가려면 최소 5~10㎞를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풍토병인 말라리아로 죽어가고 있다. 그는 "학교에서 열심히 배워서 마을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마바토간호대학에 다니는 테포 모노케치(Monoketsi·38)씨는 "결핵에 걸려 기침하고 호흡에 어려움을 겪는 어린 환자들이 많다"며 "이들을 돕고 보살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괴롭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상담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간호사 꿈을 키운 이들도 많았다.일본 세이로카국제대학 간호학과에 다니는 쿠츠와다 미도리(Kutsuwada·21)씨는 어릴적 테레사 수녀의 위인전을 읽고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테레사 수녀의 희생 정신이 감명 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쿠츠와다씨는 "봉사하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학생 때부터 걸스카우트를 하며 봉사활동을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세계간호학생대회에서 의장으로 기조연설을 한 한국 대표 성주현(22·가톨릭대 4년)씨의 포부는 당찼다. 어릴적부터 폐렴에 자주 걸렸던 그는 병원을 자주 다녀 간호사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많았고, 고3 때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 선택을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성씨는 "대학병원 간호사직에 지원할 때 1지망을 수술실 간호사로 했는데 수술실이 배울 게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일랜드 세인트앤젤라대 학생 딘 플래내건(Flanagan·25)씨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간호사란 직업은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대입을 앞두고 어린 사촌동생이 낭포성 섬유종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플래내건씨는 "동생을 보살피는 남자 간호원들이 믿음직하고 멋져 보였다"며 "그 모습을 보고 간호대학 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간호협회연합(EFN)에서 간호관리직을 맡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이날 간호사의 꿈 800개가 서울에서 아름답게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