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에 '붉은 살코기(赤身肉)' 붐이 뜨겁다. 젊은 여자들이 이끌고 있다. 육즙 뚝뚝 흐르는 쇠고기 스테이크가 핵심이고, 돼지고기 요리와 한국식 야키니쿠가 양옆에서 받친다. 이 야키니쿠집들은 한류 열풍이 불 때 우르르 생겼던 집들이 아니라, 롯폰기·시로카네·아오야마잇초메 같은 '도쿄판 강남'에 진출해 고기 맛으로 승부해서 살아남은 가게들이다.
일본 최대 맛집 사이트 중 하나인 '구루나비'에 따르면, 붉은 살코기를 파는 가게는 2011년 300여곳에서 올해 1200여곳으로 4배로 늘어났다. 단순히 가게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인기도 뜨겁다. '구루나비'와 함께 양대 맛집 사이트로 꼽히는 게 '다베로그'다. 다베로그는 일반인들이 별점을 매기는 사이트다. 도쿄 시내 음식점 10만개가 떠 있는데, 웬만한 맛집도 그중 500등 안에 들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별 다섯 개가 만점인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하는 이자카야도 별 세 개에 턱걸이했다. 본지가 '다베로그' 종합랭킹을 분석해 보니, 도쿄 맛집 상위 500곳 중 115곳이 붉은 살코기 가게였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준 행사가 이달 초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현 세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니쿠(肉)페스'였다. 니쿠페스는 고기 페스티벌을 뜻하는 일본식 영어다. 유명 고깃집 수십 곳이 야외 공원에 노포를 차리고 고기를 구워 파는 행사에 전국 각지에서 열흘 동안 93만 7000명이 몰렸다. 도쿄 행사는 세타가야구 고마자와올림픽공원에서 열렸고, 지바·가나가와현 행사 역시 이름난 대형 공원에서 열렸다. 그런데도 손님들이 노포 불판 앞에 1시간씩 줄 서는 풍경, 간신히 고기 한 접시 받아들고도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선 채로 고기를 먹는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런 축제와 별도로 '하루 세끼 고기 먹는 개그맨' 이시즈카 히데히코(石塚英彦)도 고기 맛을 소개하는 먹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소고기·돼지고기보다 생선 요리를 즐겼다. 왜 지금 고기 붐이 일어나고 있을까. 마이니치신문은 "고기 붐의 배경에는 '육식녀'가 있다"고 분석했다. 육식녀는 원래 '초식남'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연애도, 성공도 관심 없고 매사에 소극적인 남자가 초식남이다. 육식녀는 그와 반대다. 일도 열심히 하고 연애에도 적극적이며 인생을 즐기고 새로운 일을 해보려 애쓰는 20~30대 여성들을 뜻한다. 2008년 전후, 일본 미디어가 육식녀라는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 이젠 일반인도 '초식남-육식녀' 개념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이 여성들은 이름만 '육식녀'가 아니라 실제 식성도 육식 성향이라는 게 일본 음식 평론가들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