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넘게 지속돼온 사상 초유의 제로 금리 정책이 연내에 끝을 맞게 됐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 의장은 22일(현지 시각) 미 로드아일랜드주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금리 인상 연기론에 쐐기를 박고 연내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저금리를 피해 금리가 높은 신흥국 시장에 투자됐던 글로벌 자금 흐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금리 인상 연기론 일축
연내 금리 인상을 재확인한 옐런의 이날 발언은 구체적이고 단호했다. 미국 경제가 1분기에 0.2%(전기 대비)라는 저조한 성장에 그쳐 금리 인상이 애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란 전망과 관련, 옐런 의장은 "1분기 성장률 둔화는 (한파와 폭설 같은) 여러 일시적 요인 때문이며 아마도 통계적 잡음이 일부 섞였을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물가 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에 근접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비둘기파의 주장에 대해서도 "고용과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이를 때까지 긴축 통화 정책(금리 인상)을 연기하면 경기 과열 위험이 생긴다"고 반박했다.
연내 금리 인상 방침이 재확인됨에 따라 미국 경제 회복세 둔화로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내년으로 미뤄질 것이란 월가의 희망 섞인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최근 미국 증시는 부진한 경제지표가 발표되면 기준금리 인상이 늦어질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는 기현상을 보여왔다. 옐런의 이번 발언은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보다는 값싼 금리에 의존해온 미 금융시장의 과열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첫 기준금리 인상 시점은 9월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블룸버그가 지난 8~13일 경제 전문가 54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42명이 9월 첫 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금리 인상 속도는 매우 느릴 듯
미국은 과거 저금리를 탈출할 때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줬다. 연준이 지난 1994년 2월부터 불과 1년 만에 3%였던 기준금리를 6%로 3%포인트나 올리자, 신흥국에 투자됐던 돈이 미국으로 환류하면서 멕시코와 한국, 러시아 등이 연쇄적으로 국가 부도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상은 과거와 달리 완만한 속도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옐런 의장은 이날 "기준금리가 한 번 오른 다음에는 정상화 속도가 점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기준금리가 장기적인 정상 수준으로 되돌아가려면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런 신중론은 금리 인상이 자칫 세계 경제의 불황뿐 아니라 미국 경제 회복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옐런 의장은 이날 금융 위기 이후 엄격해진 대출과 정부 재정 지출의 감소, 세계 경제의 둔화 등 세 가지를 미국 경제가 당면한 역풍으로 꼽았다. 그는 "엄격한 대출 심사와 재정 지출 감소의 위험은 낮아지고 있지만, 달러화 강세와 세계 경제 둔화가 미국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옐런의 발언은 아시아와 유럽 증시가 폐장한 22일 오후 1시쯤(한국시간 23일 오전 2시) 나왔다. 그런데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0.29%, 나스닥지수는 0.03%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점진적 금리 인상'이란 옐런의 처방이 '연내 금리 인상'이란 충격을 상쇄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