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의 한 고급 타운하우스에 사는 박모(77)씨는 얼마전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새삼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하주차장을 메운 승용차 중 절반 이상이 고급 수입차였다.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으로 일하고 퇴직한 박씨에 따르면, 이 타운하우스에는 중견·중소기업 경영주가 많이 거주한다. 박씨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너도나도 법인 명의의 벤츠, BMW 등 고급 외제차를 굴린다"며 "심지어 한 집에서 마누라, 아들, 딸까지 모두 전무, 상무 직함을 달고 외제차를 서너 대씩 굴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정부에서 업무용차 리스 금액을 전액 손비처리해주다 보니 생돈 주고 자동차를 사는 것보다 수입 리스차를 굴리는 것이 훨씬 저렴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박씨의 말처럼 중견·중소기업 사장들이 고급 외제차를 굴리는 이유는 절세효과 때문이다. 대개 이들이 굴리는 수입차는 '업무용도의 리스차'다. 업무용도로 리스한 차량의 경우 법인세와 소득세 납부 때 매월 납부한 리스 금액을 전액 손비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세금부과의 기준이 되는 과표가 줄고 자연히 절세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반 서민들은 한 대 굴리기도 힘든 고급 수입차를 리스해 전 가족이 굴리는 경우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가령 연소득(순수입)이 1억1000만원 정도 되는 개인사업자의 경우 종합소득세 35%(과표 8800만원 초과)와 주민세(소득세의 10%)를 부담해야 한다. 이 경우 결정세액은 2798만6000원. 하지만 리스차를 뽑아서 연간 3000만원(가정) 정도의 리스비를 부담하면, 연 소득(순수입)이 8000만원(1억1000만원-3000만원)대로 떨어지면서 소득세 26%(과표 4600~8800만원)와 주민세(소득세의 10%)만 내면 끝난다. 이 경우 결정세액은 1713만8000원으로 기존 세금(2798만6000원)에 비해 1075만8000원까지 세금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어차피 업무용이나 개인용이나 타고 다닐 차 한 대는 있어야 하는 만큼 차량을 따로 구입하지 않고 한 달 리스 비용 250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세금을 1000만원 넘게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월 250만원 정도의 리스비면 최고급 BMW 7시리즈도 자기 차처럼 굴릴 수 있다.

지난 4월 3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5 서울 모터쇼’에 수입차들이 대거 전시돼 있다.

더욱이 리스차의 경우 자동차 취득에 따르는 번거로운 취등록세와 국공채 매입 부담도 없다. 가령 차량가격만 6490만원인 BMW 5시리즈를 리스한다고 치자. 이 경우 들어가는 취득세와 국공채 매입 할인 비용은 대략 444만2400원. 하지만 리스의 경우 취등록세 등 초기비용 일체를 리스사에서 부담하는 구조다. 취등록에 따르는 초기비용이 필요없는 셈. 부대비용 없이 순수 차량가격 6490만원만 36개월(3년) 리스로 납부한다고 치면 매달 156만원가량만 들여 BMW 5시리즈를 굴릴 수 있다.

더욱이 리스를 하면 외제차를 구입하는 데 드는 최대 수억원의 목돈도 장만할 필요가 없다. 보증금 일부를 두고 매월 분납하는 구조라서다. 게다가 "리스 차량의 경우 소유자가 리스 회사로 등록돼 익명성도 유지되고, '허' 자의 영업용 번호판이 달리는 렌터카와 달리 자가용으로 등록돼 있어 소위 '품위유지'에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수입차 오토리스사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이는 개인사업자뿐만 아니라 법인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절세구조다.

이 같은 배경에서 고급 수입차를 취급하는 수입차 딜러들과 오토리스사들은 중소기업 경영주,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업무용 수입차를 굴릴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도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할부금융 자회사를 두고 있다. 벤츠 리스차를 취급하는 한 수입차 딜러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전액 손비처리 받을 수 있어 회계처리도 용이하고, 자산으로 처리되지 않아 부채비율을 줄일 수 있어 건강보험료 및 세금이 줄어드는 혜택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수입차 시장은 '월 판매량 2만대 시대'를 맞았다. 1987년 수입차 시장 개방 이후 최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3월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2만2280대. 전년 동기대비 41.6% 증가한 수치다. 종전 월간 최다 기록인 지난 1월의 1만9930대를 뛰어넘은 역대 최대다.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점유율도 17.6%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수입차 점유율 13.9%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게다가 최근 유럽 수입차 브랜드들이 오는 9월부터 강화되는 '유로6' 환경기준의 국내 도입을 앞두고 기존 '유로5'에 맞춰 생산한 차량을 '떨이식'으로 재고처리하면서 수입차는 도로에 쏟아지고 있다. 연비 등 환경기준이 떨어지는 '유로5' 기준 차량들이 일시에 도로로 쏟아져 나오면서 대기오염 문제까지 우려되는 형편이다.

수입차 범람으로 국내 1위 현대기아차의 내수시장 방어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현대기아차는 사내 각종 행사나 보고서에서 '수입차'란 명칭을 모두 '외산차(外産車)'로 교체했다. 외산차의 범주에는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이나, 중국 베이징공장에서 만드는 현대차 역시 포함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외제차는 너무 오래된 느낌이 들고, 수입차라는 이름보다는 외산차라는 이름이 소비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며 "수입차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수입차 급증의 주된 이유가 업무용을 빙자한 리스차 때문이라는 것은 통계에서도 어느 정도 입증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14년 등록된 수입차는 모두 19만6359대. 이 중 구매유형별로는 40.2%에 달하는 7만8999대가 법인명의 수입차였다. 개인이 구매한 차량대수는 11만7360대로, 전체의 59.8%에 그쳤다. 벤츠, BMW 등 고급 수입차의 경우 50% 정도는 리스 차량이고 포르쉐, 페라리, 벤틀리,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등 소위 수퍼카의 경우 90% 가까이가 업무용 리스차다. 일례로 벤틀리는 지난해 개인용으로는 51대 팔린 데 반해, 법인용으로는 201대나 팔렸다. 심지어 대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개인판매가 1대 이뤄진 데 반해, 법인용으로는 무려 44대나 팔려나갔다.

업무용 수입 리스차가 급증하는 까닭은 업무용 리스차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손비처리 규정 탓이다. 앞서 밝혔듯이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가 업무용도의 리스차를 몰 경우 매월 리스비로 빠져나가는 비용을 전액 손비처리할 수 있어 법인세와 소득세를 줄일 수 있다. 절세한 돈으로 고급 수입차를 굴릴 수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정부와 세정당국으로서도 업무용 리스차는 고민거리가 된 지 오래다. 업무용을 빙자한 '얌체 리스차'들이 법인세와 소득세 탈루의 구멍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용 리스차를 출퇴근 용도나 주말나들이 등 사적인 용도로 이용해도 뾰족히 적발해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업무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포르쉐나 페라리 등 고급 스포츠카를 업무용으로 리스한 다음 주말 드라이브 등 사적으로 이용해도 '해외 VIP 접대용'이라고 둘러대면 국세청 등 과세당국으로서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

2011년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 부부는 람보르기니 가야드로, 포르쉐 카이엔, 벤츠의 CL500 등 법인 명의의 업무용 차량을 자녀 통학용 등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상 국민들이 십시일반 낸 세금으로, 재벌 자녀들의 통학비를 보조해준 셈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세청에서 법인이 업무용 차량으로 취득하거나 리스한 승용자동차를 사적용도로 사용하였는지 유무를 파악하여 손금산입의 부적합성에 따른 과세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②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