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연구가 히데코씨가 연희동 집마당에서 기르고 있는 허브 타라곤. 향기가 달콤하고 매콤쌉쌀한 맛이 난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이탈리아 요리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화이트 럼(rum)과 민트, 라임으로 만든 모히토 칵테일이 유행하면서 서양 허브(herb)가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요리 교실을 시작한 8년 전에는 바질이나 루콜라 정도만 해도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없어서, 일본에 갈 때마다 허브 씨앗을 가져오곤 했다.

일부러 구해 온 씨앗 중에는 서양 허브뿐 아니라 푸른 차조기 씨앗도 포함되어 있었다. 차조기 종류에는 채소로 먹는 푸른 차조기와 매실 장아찌를 붉게 만드는 빨간 차조기가 있다. 푸른 차조기는 일본 요리에 자주 쓰는데, 수년 전만 해도 고급 초밥집의 오징어 초밥에 감겨 있거나 튀김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꼭 필요할 땐 푸른 차조기와 모양이 비슷한 깻잎을 써봤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푸른 차조기나 깻잎하고 언뜻 보아 비슷하게 생겼지만, 향이 달라서 바꿔 쓰기는 어렵다.

한번은 모험 삼아 일본에서 갖고 온 푸른 차조기 씨앗을 정원 화단에 뿌렸다. 씨앗은 한국 토양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는지 기특하게도 조용히 잎이 열렸다. 첫 파종으로 수확한 푸른 차조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그해 여름은 매일같이 푸른 차조기를 쓴 요리만 해 먹었다. 그런데 이듬해 초여름 씨를 뿌리지도 않은 곳에서 푸른 차조기가 쑥쑥 자라더니 온 정원이 푸른 차조기로 뒤덮일 지경이 됐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푸른 차조기와 어딘가 달랐다. 잎의 뒷면은 붉은빛이 돌았고, 향과 촉감은 영락없이 깻잎이었다.

그다음부터가 난리였다. 한두 포기라도 골라내 볼까 싶었는데, 우왕좌왕하는 사이 정원은 온통 깻잎투성이가 됐다. 결국 푸른 차조기 키우기는 포기했다. 토양과 물 때문에 변종한 것일까. 나중에라도 전문가에게 꼭 물어보려고 한다.

내년에는 정원에 산초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익으면 갈색이 되는 산초나무 열매는 가루로 만들어 추어탕 등에 넣기도 하지만, 덜 익은 열매를 조리거나 간장에 절여두면 더위를 먹어 식욕이 없을 때 최고 보약이다. 고기나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 데 쓰는 로즈메리와 타임, 차와 칵테일에 빠뜨릴 수 없는 민트 등의 허브는 튀김으로 먹기도 하고, 한국식 부각을 해봐도 좋다. 고수, 푸른 차조기, 산초 열매, 깻잎, 풋고추, 양하, 루콜라, 바질 등 허브 종류는 대부분 가냘프지만, 개성이 넘치는 향기와 더위에 지지 않는 생명력이 매력이다.

어떤 허브든 서로 섞이면 복합적인 깊이가 우러난다. 입에 넣어 씹는 동안 맛이 변하는 것도 매력이다. 요리를 다 만들었을 때가 맛의 완성이 아니라, 입에 들어간 뒤부터가 진짜다. 물론 허브는 어디까지나 조연이다. 주인공이 돋보이도록 조심스럽게 쓰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궁합에 신경 써야 한다. 루콜라와 참기름 드레싱은 고소하지만, 바질과 참기름은 향기가 너무 강해서 서로 안 맞는다. 머릿속으로 한국의 허브와 서양 허브를 혼합해본다.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즐거운 일이다.

오늘 경상남도 창녕군의 한 농원에 주문한 허브 모종이 도착했다. 허브 심기는 8년째 연례행사다. 오늘은 비가 오니 내일 정원에 심으려고 한다. 민트, 바질, 로즈메리, 타임, 이탈리아 파슬리, 프렌치 라벤더, 레몬버베나…. 5월이 오면 허브 모종이 쑥쑥 자라 일제히 향기를 내뿜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