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식 기아차동차 프라이드 수동 미션 모델, 나는 우리 집 첫 차인 그 녀석을 ‘꼬마자동차 붕붕’이라고 불렀다. 엔진과 미션의 조합이 뛰어나 자신의 힘을 최대한 짜내며 도심을 누비던 차, 별 감흥 없는 자동변속기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도 그런 차가 있을까.
독일 다임러의 경차 ‘스마트 포투’에 앉아보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작다 못 해 두명 밖에 못 타는 공간, 엔진마저 트렁크 밑에 꽁꽁 숨은 이 녀석은 누가 봐도 귀여운 꼬마다. 시동 걸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르렁 하는 엔진음이 ‘어디 한번 밟아 보시지’하고 도발했다. 이 꼬마의 연비가 궁금해졌다.
연비로 시작해 연비로 끝난다
스마트의 제원상 표준 연비는 23.2㎞/L. 금요일 오후 서울 을지로와 충무로, 강남 일대 등 도심 도로와 토요일 오전이 비교적 한산한 분당 내곡 고속화도로를 8:2 비율로 주행한 후 연비를 측정해보니 복합연비가 21.4㎞/L였다. 기자가 시승한 모델은 스마트 포투 펄스 쿠페(Pulse Coupe) 모델로 3기통짜리 1.0 MHD(Micro Hybrid) 엔진을 얹었다. 가솔린 연료로 5800rpm에서 최고 출력 71마력, 2800rpm에서 최대 토크(엔진의 순간 가속력) 9.4㎏ㆍm가 나온다. 공차 중량이 830㎏인 것을 감안하면 도심 주행용으로는 힘이 부족하지도 과분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정도다.
연비를 더 좋게 하려면 에코(ECO)모드를 작동하면 된다. 계기판 오른쪽에 ECO 로고가 뜨며 ISG(Idle stop & go, 공회전 제한) 기능이 활성화되는데 완전 정차 시 엔진이 꺼지고 다시 액셀레이터를 밟으면 시동이 걸리는 방식이다. 연비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시동이 걸리며 출발할 때 나오는 한 박자 느린 가속감은 다소 아쉬웠다. 정체가 심한 도로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경우 계속 시동이 켜졌다 꺼졌다 해서 ‘꽉 막힌 도심주행때 ECO모드를 켜는데 과연 연비에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조사 제원에는 5단 자동변속기라고 소개돼있는데, 이 녀석은 사실상 클러치만 없는 반(半) 수동변속기 모델이다. 변속기는 A, N, R 총 3가지 모드를 쓸 수 있다. A모드는 1단 기어가 안 들어가있는 자동변속기의 D모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평지에서 A모드에 기어를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차가 안 나간다. 악셀레이터를 꾹 밟아줘야 1단 기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차가 묵직하게 꿈틀댄다. 언덕에 서 있을 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금세 차가 뒤로 미끄러진다. 1초 동안 차를 잡아주는 안전 기능이 있지만, 자동변속기에 익숙해진 운전자라면 언덕 브레이크 조작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핸들에 달린 패들시프트(핸들 양쪽 뒤에 달린 기어 변속 장치) 또는 기어봉으로 기어 단수를 조작하면 거의 수동변속기에 가깝게 변신한다. 자동변속기만 몰아 본 2종 보통 면허 소지자라도 수동이란 단어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변속할 때가 되면 계기판의 기어단수 표시부분에 위쪽으로 화살표가 떠 기어변속 타이밍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클러치가 없으니 2종 면허 소지자라도 운전 가능하다. 이렇게 주행하다가 또 자동변속기의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기어봉 왼쪽에 튀어나온 작은 버튼을 누르면 A모드로 즉시 바뀐다.
나름 후륜구동입니다
엔진이 특이하게 트렁크 하단에 설치돼있고 후륜구동 방식이라 겨울엔 스노우타이어를 반드시 껴야 한다. 변속 때마다 뒤에서 쭉 밀어주는 가속감이 경쾌하다. 하지만 A모드로 변속땐 1단부터 5단까지 각 단별로 올라갈 때마다 차가 앞뒤로 꿀렁인다. 물론 패들시프트로 직접 기어를 변속해가면 이런 꿀렁임은 거의 없다.
스마트(Smart)라는 명칭은 유명 시계 브랜드 ‘스와치(Swatch)’와 예술(art)이란 단어의 합성어다. 스와치의 감성에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의 기술력을 더한 작품(Art)이라는 의미다. 벤츠 DNA를 가진 차답게 서스펜션이 단단한 편이다. 반대로 말하면 차 크기에 비해 주행 여건을 받쳐주는 하체 강성이 뛰어나다는 뜻이고, 시속 100km 이상에서도 좌우 출렁임 등 불안한 느낌이 거의 안 든다. 코너링은 마치 젤리를 씹는 것처럼 쫀득하다. 15인치 순정 휠(175/55R/15) 안에는 경차답지 않게 큰 디스크 로터가 들어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다른 경차와 달리 응답력이 상당히 좋았지만, 너무 반응이 좋은 탓에 완력 조절이 버거웠다.
풍절음과 하체소음, 그리고 가속시 엔진소음은 차급을 감안해도 다소 심한 편이다. ‘연비’란 장점을 떠올리며 이런 단점을 다 용서해보려고 했지만 연비만으론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키가 185㎝인데 장시간 운전에도 딱히 좌석이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차는 작아보여도 혼자 또는 누군가와 같이 타기에 작은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스마트는 왕년의 NBA 스타 샤킬 오닐의 애마다.
한번쯤 타볼만한 펀카, 하지만 비싸다
국산 중형급 이상 차들의 특징인 '물침대 서스펜션'과 화려한 실내옵션이 좋다면 굳이 스마트 포투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포투는 사이드 미러까지 수동 레버로 일일이 조정해야한다. 센터 미러는 시야각이 좁아 애프터마켓 제품을 꼭 사서 끼워야 할 것 같았다.
다만, 혼자 살거나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세컨카로 타볼만하다. 수동과 자동을 오가는 운전 재미는 단연 포투의 백미다. 인테리어 면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다소 과한 느낌이다. 그러나 디지털 측면에서는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는 편이다. 후방카메라를 지원하는 소니의 올인원 터치스크린은 터치감이 일품이다. 터치스크린을 살짝 들어내면 뒤편에 CD플레이어와 USB 단자 등이 빼곡히 숨어있다. 말 그대로 클래식한 매력이 있는 차다.
차량 가격은 시승한 펄스 쿠페(Pulse Coupe) 모델이 2640만원(부가세 포함). 뚜껑이 완전히 열리는 펄스 카브리오(Pulse Cabrio) 모델이 3040만원이다. 최저 사양 모델인 패션 쿠페(Passion Coupe)는 2490만원. 참고로 2490만원은 웬만한 국산 중형세단 최저 사양 모델(부가세 포함)과 맞먹는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