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봄은 강렬한 생명력을 일깨워준다. 서울의 겨울은 내가 살았던 일본이나 지중해 도시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얼어붙는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춥다. 그러나 3월이 되면 혹한을 이기고 모든 생명이 쑥쑥 땅 위로 올라온다. 내가 사는 연희동은 단독주택이 많은 곳이라 집집마다 매화, 목련, 벚꽃, 진달래, 라일락 등이 정원을 물들인다.

이웃 정원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한다. 이웃집 벚꽃 덕분에 밤이면 창가가 불빛처럼 환해진다. 바람이라도 불면 벚꽃잎이 눈꽃처럼 날리는 그림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꽃이 날린 다음 날 우리 집 옥상까지 날아온 벚꽃잎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자면 아까운 생각이 절로 든다. 벚꽃 소금 절임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그러나 연희동 정원이 대부분 그렇듯 그 집도 해마다 살충제를 뿌린다. 즉, 식용(食用)으로 쓰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조선일보 DB

식용꽃은 관상용과 달리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키운다. 세계 각지, 특히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는 일상적으로 식용꽃을 활용한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식용이라고 해서 특수한 품종만 있는 건 아니다. 팬지, 제비꽃, 카네이션, 데이지, 베고니아, 페튜니아, 버베나, 임파첸스, 백일초, 마리골드, 멜람포디움, 미니해바라기, 라벤더, 토레니아, 나스터튬, 바질, 나팔꽃, 샐비어, 패랭이꽃, 앵초, 시네라리아 등 사계절 내내 다양한 종류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버스 정거장이나 길가 화단에서 본 적이 있는 꽃이다. 관상용으로 키우느냐, 식용으로 재배하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천엽벚나무 꽃잎을 따서 소금에 절인 것을 사쿠라즈케(櫻漬)라고 한다. 사쿠라즈케는 축하 행사 때 녹차 대신 벚꽃차, 즉 사쿠라유(櫻湯)로 자주 마신다. 벚꽃떡으로도 먹고, 주먹밥에 고명으로 올리거나 팥빵에 장식을 하기도 한다. 사쿠라즈케용 벚꽃은 식용으로 쓰기 위해 딸 때 꽃자루부터 송이째 딴다.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한 뒤, 꽃과 소금을 번갈아가며 포개고, 변색을 막기 위해 매실초를 뿌린 뒤 사흘간 놓아둔다. 그 후에 날씨 좋은 날에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말린다. 바싹 말린 꽃을 소금에 절여서 보존하면 된다. 바로 소금에 절이기만 하는 게 아니어서 조금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쿠키나 젤리 등 과자에 포인트로 사용하면 참 예쁘다. 한국의 진달래 화전<사진>에 사쿠라즈케를 올려도 괜찮을지 모른다. 차가운 맥주 거품 위에 띄워서 마셔도 아주 맛있다.

식용꽃은 요리에 색채를 더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이 많다. 꽃 종류에 따라 단맛과 쓴맛이 있고, 채소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비타민이나 섬유질이 많이 들었다. 올봄 나의 요리 교실에서는 크레송과 딜, 바질 등 각종 허브와 한국 봄나물을 섞어서 아몬드, 호박씨, 흰깨 볶은 것과 지중해식 드레싱을 섞고 마지막으로 식용꽃을 흩뿌린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식용꽃은 봄나물과 함께 들기름으로 무쳐 먹어도 맛있다.

개나리, 진달래, 유채꽃, 오랑캐꽃, 민들레, 복숭아꽃, 달맞이꽃, 아카시아꽃, 찔레꽃, 호박꽃, 동백꽃…. 아직도 내가 잘 모르지만 사계절 내내 더 많은 한국의 예쁘고 맛있는 식용꽃이 있을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우리 집 정원에 진달래가 피면 화전을 부쳐 진달래 꽃잎을 올린다. 올해는 벚꽃을 두 손 가득 따와서 일본식 사쿠라즈케를 만들어 진달래 옆에 올려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