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홍 재즈클럽 '원스인어블루문' 대표

영화 '위플래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앤드루의 열정과 좌절, 노력과 성공을 보여준다. 여기에 플레처 교수의 차가운 광기가 더해져 팽팽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이 지휘자 플레처의 퇴장 명령을 무시하고 드럼 솔로로 실력을 발휘하는 오기를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봤다. 단원으로서 앤드루의 행동은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나? 드럼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평범하게 산다면 패배자일까? 성공에 이기심은 필요악인가? 결국 플레처가 바란 것은 그러한 오기인가?

재즈는 주어진 코드의 진행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연주자의 개성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에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음악'이라고도 한다. 마냥 자유스러워 보이는 이 음악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엄격한 룰이 존재한다. '인터플레이(interplay)'가 바로 그것이다. 인터플레이란 여러 연주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등한 입장에서 연주를 해나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대화와 소통, 협조와 양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과 무한경쟁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whiplash)하며 피 흘리는 앤드루이다. 무한 긍정으로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한없이 착취하는 사회를 떠올리며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를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속이 착잡해진다.

주인공의 열정과 성공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는 채찍질이 싫다. 강박관념에 휩싸인 앤드루의 역할을 하기엔 부담스럽다. 다행히 인터플레이에는 오기를 부리는 주인공이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다 함께 인터플레이로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가는 사회,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어 본다. 이 얼마나 재지(jazzy)한 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