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프랑스 알프스 산맥으로 추락한 독일 저먼윙스 소속 에어버스(A320) 여객기는 부기장이 단독으로 여객기를 급하강시켜 알프스와 충돌한 ‘자살 비행’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프랑스 검찰이 현장에서 회수한 조종석음성녹음장치(CVR)를 분석한 결과, 부기장인 안드레아스 루비츠(28)는 비행기가 순항 고도인 1만2000m에 도달한 이후 기장이 화장실 이용을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가자, 조종실 문을 잠그고 여객기를 8분 동안 급하강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기장은 조종실 문을 두드리고 부술 듯이 때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강화된 여객기 조종실 보안 규정이 이번 사건에 오히려 독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테러 이후 세계 여러 항공사들은 외부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조종실 문을 충격에 강한 소재로 만들었고, 자동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스테판 샤프라스 에어버스 대변인에 따르면, 에어버스는 조종실 문이 닫히면 기본적으로 잠기게 만들었다. 내부에서 스위치를 움직여 한 번 더 잠그면 외부에 빨간 등으로 '잠김' 표시가 뜨면서 5분 동안 문과 키패드, 버저가 일절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에어버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여객기 조종실 보안을 강화했다. 사진은 새롭게 강화된 조종실 기능을 소개하는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긴급 상황일 때는 외부 키패드에 응급 코드를 입력해 여는 방법이 있다. 응급 코드가 입력되면 큰 소리로 버저가 울리고 조종실 컨트롤 패널에 불이 들어와 혹시 정신을 잃었을지 모르는 조종사를 깨울 수 있다. 30초 뒤에는 5초 동안 문도 열린다.

이런 규정은 저먼윙스에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저먼윙스의 모회사인 루프트한자의 카르스텐 스포르 최고경영자(CEO)는 "승무원들은 조종실이 잠겨 들어갈 수 없거나, 누군가가 안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할 때 응급코드를 사용할 수 있다. 사고기 기장도 이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그러나 기장이 응급코드를 사용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용했어도 부기장이 5분 잠금장치를 작동했거나, 다른 방식으로 문을 막았을 수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스포르씨는 "기장이 코드를 잊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번 사건 이후 유럽 항공사들은 미국처럼 조종실 안에 반드시 2명 이상 있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하거나 계획하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조종사 2명 중 1명이 조종실을 벗어났을 경우 다른 승무원이 대신 조종실에 들어가 조종실 내부에 반드시 2명 이상이 있도록 의무화했다.

기존 독일 항공법에는 조종사가 밖으로 나갔을 때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는 규정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 이후 독일 항공산업연맹(BDL)은 "조종실에 2명 이상의 승무원이 계속 상주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노르웨이의 노르웨이 에어셔틀은 26일 “비행 중에는 조종실에 반드시 2명 이상이 근무해야 한다”고 지시했고, 영국 이지제트 항공사도 27일부터 이 규정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밖에도 핀란드 핀에어 등 다수 항공사가 비슷한 규정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