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늘로 간 언니가 부러워요. 그곳에선 편안할 테니까….”
대학생 A(24)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한 살 터울 언니는 14년간 친부(54)에게 성폭행 당한 악몽을 견디지 못하고 작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친부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A씨는 24일 본지 인터뷰에서 “’그 사람’ 없는 편안한 곳으로 먼저 떠난 언니가 정말 부럽다”면서 “매일 눈뜨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어서 언니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A씨는 아버지를 ‘그 사람’으로 불렀다. 그의 친부는 1994년부터 14년간 상습적으로 이들 자매를 성폭행 또는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19일 서울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에 구속됐다. 그러나 A씨는 “내 삶에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서울 노원구 작은 셋방에는 그와 어머니 둘이서 살고 있다. 그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 40만원, 매월 나오는 기초생활수급 생계비가 수입의 전부다. 두 사람은 우울증 치료제를 나눠 먹으며 하루하루 버틴다고 했다.
A씨는 “이제 우울증 약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고 했다. 며칠 전 새벽에도 한꺼번에 약봉지 7포를 입에 털어넣었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가해자는 구속됐지만, 성추행 당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여전히 그의 곁을 맴돌며 숨통을 누른다고 했다. “무서워요. 그 사람이 또 다시 찾아올까봐….”
그와 언니 B씨는 4살 때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친부는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 “아빠랑 병원 놀이 하자”며 지속적으로 언니를 성폭행했고, 동생을 성추행했다. 두 사람을 늘 따로 불러냈다. 어머니도 몰랐다. “아빠가 이상하다”는 언니 말에 친할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고아원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자매는 서로 피해자인 줄 모르고 각자 속앓이를 하다 우울증에 빠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수시로 성추행을 당한 A씨는 “중·고등학교에 올라와 몇 번이고 학교에서 손목을 그었다. 그만큼 죽고 싶었다”고 했다. 언니에 대한 성폭행은 2006년 부모의 이혼 뒤에도 계속됐다. 집에 찾아와 “자꾸 반항하면 동생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면서 또 성폭행을 했다.
A씨는 “언니가 스무살이 되던 2010년, 할머니가 죽고 나서야 그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며 “그 사람이 내게 한 일(성추행)이 있었기에 난 충격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2012년쯤 이모와 함께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언니한테 왜 그랬느냐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우는 저희한테 그러더군요. ‘걔(언니)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요.”
언니는 이후 정신과 치료와 성폭력상담소 상담을 받았지만, 우울증에 이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못 이기고 결국 작년 5월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남은 모녀는 경찰에 신고할까도 생각했지만 성폭행 시점이 오래 전이고, B씨도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라 포기했다. 딸을 잃은 어머니, 언니를 잃은 A씨의 우울증은 극도로 심해졌다. 그리고 9개월만인 지난달 6일 새벽, A씨도 서울 한남대교 난간 위에 섰다.
그는 “죽기 위해 단단히 계획을 짰다”고 했다. “혹시라도 죽지 않을까봐 손목을 긋고 약도 많이 먹고 뛰어들려 했어요. 과다출혈이든, 약물이든, 질식이든 꼭 죽으려고요.” 하지만 다리 난간에 매달렸던 그는 행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경찰은 그에게 투신한 이유를 묻다가 친부의 성범죄 사실을 전해듣고 수사에 착수, 한 달 반만에 그를 구속했다. 그와 어머니의 진술, 언니의 과거 성폭행 상담 기록이 결정적이었다.
2012년 이후 친부를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다는 그는 “경찰에 (피해 사실을) 얘기할 때만 해도 그 사람에게 이런 벌을 줄 수 있을지 몰랐다. 우리 자매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당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일 꿈마다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 있어 아직도 그 사람이 잡혀 들어간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요즘도 떨리는 손으로 우울증 약 뭉치를 쥔 채 하루하루 버틴다고 했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일주일에 세 번은 식당으로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힘들어도 가요. 수업을 듣고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 사람’ 생각이 덜 나니까요.”
그는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먼저 죽어 그 사람 없는 편안한 곳으로 떠난 언니가 부럽다”는 말만 여러 번 되뇌었다. 경찰이 주선하는 심리 상담 치료도 마다하고 있다.
그는 지친 듯했다. 과거 기억을 떠올릴 때면 진저리를 쳤다. “그 사람이 벌을 받게 됐다는 데도 아무렇지 않아요. 악몽은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테고, 그 사람은 다시 세상에 나오겠죠. 제가 과연 올해를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친부는 여전히 자신의 성폭행·성추행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