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찰칵.'

지난 19일 서울의 한 사립대 의학과 수업에서 난데없이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강사가 수업자료로 쓰던 슬라이드를 설명한 뒤 다음 장으로 넘기려던 때였다. 10여명의 학생이 스마트폰을 들고 강의 슬라이드를 촬영했다. 강의실 뒤편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은 앞으로 나와 슬라이드 자료를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았다. 셔터음에 강사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멈칫했지만, 학생들의 사진 촬영을 막지는 않았다. 강사 김모(42)씨는 "예전 같으면 화를 냈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했다.

제주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던 대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들어 슬라이드 수업 자료 내용을 촬영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대학 강의실 풍경이 바뀌고 있다. 강의 내용을 노트북·태블릿PC로 받아 치는 '타자족(族)', 강의 내용을 스마트폰에 녹음하는 '녹음족'에 이어 '촬영족'들이 강의실을 점령하고 있다. 사진 촬영 한 번으로 강의 내용을 직접 손으로 필기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 입장에선 편리해 보이지만 수업 태도의 '디지털화'를 놓고 대학 사회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어떻게 수업 시간에 교수님 목소리보다 '찰칵' 소리가 더 많이 들리느냐. 카메라 셔터 소리 때문에 강의에 집중할 수 없는데 이들은 촬영족이 아니라 얌체족"이라는 글이 올라와 논쟁이 붙었다. 대학원 석사과정 이모(26)씨는 "지난 학기 통계 수업 때 연방 터져 나오는 카메라 셔터 소리 때문에 다른 과 학생과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강의실 촬영족을 바라보는 교수들도 달갑지는 않은 분위기다. 서울 한 사립대학 교수는 새 학기 들어 수강생들에게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선언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이 강의노트 돌려보듯 내 강의 자료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서 돌려본 일이 있어 수업 자료 촬영을 금지했다"며 " 학교 차원에서 수업 시간 중 IT 기기 사용에 대한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촬영족'들은 "강의 내용을 받아적기만 하는 게 좋은 수업태도는 아니지 않으냐"고 하고 있다. 오히려 필기 시간을 줄여 수업에 집중할 수 있어 효율적이란 것이다. 서울대 공대에 다니는 이모(21)씨는 "수업 때 강의 내용을 다 필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손 필기 대신 사진 촬영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대학교 4학년 김모(26)씨는 "한 교양 수업에서 교수가 동영상을 틀어주며 '시험에 나온다'고 하자 수강생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는 바람에 무슨 기자회견장에 온 줄 알았다"며 "강의 내용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까지 찍는 모습이 암기 위주의 우리 교육에서 비롯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