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00대 기업(매출액 기준)의 입사지원서에 여전히 지원자의 직무능력과 관계없는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항목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3년 ‘입사지원서 차별항목 개선안’을 발표, 국내 기업들에 체중·색맹·신장 등 신체사항, 가족 성명·연령·직위·월수입 등 가족관계, 출신학교·종교·출신지역·혼인 여부 등 신상 관련 등 총 36개 사항을 지원서 항목에서 제외하라는 내용으로 개선안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의 권고안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2014년 2학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수업 ‘시민교육’을 수강한 김채영(관광학부·20)씨 등 학생 4명이 작성한 ‘기업 이력서의 불필요한 개인정보 요구 관행 해결을 위한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국내 철강·레저·전자·IT·식품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는 개인정보를 입사지원서에서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항목은 주량·흡연 여부·출석 교회 이름·옷 사이즈·몸무게·부모 학력·재산 정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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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를 통해 매출액 기준 국내 300대 대기업의 이력서 양식을 수집·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기업이 부모·형제의 학력과 출신 학교, 주거 형태, 재산 정도(차량 소유 여부 등)를 물었고, 키·몸무게·시력, 신체치수(옷·신발 크기)를 물었다. 몇몇 기업들은 주량과 흡연 여부를 묻기도 했고, 본인이 출석하는 교회 이름, 블로그와 SNS 주소, 가훈, 이전 직장의 정규·비정규직 여부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인맥을 묻는 기업들도 있었는데, 인맥 명단·지인 명단·추천인을 써넣으라는 경우였다. 한 금융회사는 처음부터 개인 신용정보 공개 동의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인권위가 제외를 권고한 항목 중 학교·학력을 요구한 기업이 가장 많았는데 전체 조사 대상 기업 307곳 중 출신 대학과 학점을 묻는 기업이 256곳, 출신 고교를 묻는 기업이 243곳이었다. 이어 ‘가족의 직업’(233곳), ‘가족의 학력’(199곳) 순이었다, ‘신장’과 ‘체중’을 묻는 곳도 각각 166곳에 달했다.

외국계 기업의 입사지원서는 우리나라의 입사지원서와는 많이 달랐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지원자를 식별할 수 있는 개인정보인 이름·이메일 주소·전화번호와 직장명을 제외한 경력정보, 자격정보만을 요구하는 기업이 대다수였다. 외국계 기업은 외국에 본사를 두고 우리나라에은 지사를 두고 한국인을 고용하는 회사를 조사 대상으로 했다.

해당 조사 내용을 토대로 391명의 대학생·취업준비생에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력서 항목’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81%가 ‘재산’을 꼽았다. ‘결혼기념일’(78%), ‘승용차 소유 여부’(77%), ‘가족 관련 항목’(74%), ‘주량’(72%) 순이었다.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는 것도 26%의 응답자가 부당하다고 답했고, 이중 72%가 여성 응답자였다.

학생들은 해당 기업들에 “왜 이렇게 많은 정보를 수집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회신이 온 기업은 농심 한 군데뿐이었다. 농심 측은 “이력서는 채용과정에서 회사가 다수의 지원자들에 대해 필요로 하는 직무역량을 파악하는 매개체”라며 “서류심사 과정에서 일부 정보는 관행적으로 받던 것으로, 당사에서는 앞으로 신체정보(키·몸무게 등)는 받지 않기로 했고 가족사항에 대해선 선택적으로 기재할 수 있도록 양식개선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채영 학생은 “조사를 하면서 대부분 기업에서 직무능력과 전혀 상관없는 정보를 지원자들에게 요구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이같은 관행이 빨리 없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