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민자당 전국구), 15대(자민련) 국회의원을 거쳤다길래 할아버지일 줄 알았는데, 검은색 뿔테 안경에 오렌지색 포켓치프를 한 중년 신사였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에서 구천서(65·사진) 한반도 미래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사무실 창 밖으로 청와대가 한 눈에 보였다.
구 이사장을 만나기 전에 중화방송(CCTV)의 인터뷰 동영상을 먼저 봤다. 그는 현재 '한중경제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쉰둘에 중국에 건너가 예순에 북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땄다. 최근 부산 해운대 동부산관광단지에 112만㎡(34만평)규모의 골프장·리조트 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이 사업은 개발비만 1조원에 이른다.
그의 이력은 흥미로웠다. 1976년 고려대를 졸업해 은행에 입사했으나 서른이 되던 해 빌딩용역업체를 창업했다. 서른일곱에 민정당 청년분과위원장으로 발탁됐고, 마흔에 14대 총선에서 전국구 의원(민자당)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5대때 자민련으로 당적을 바꿔 고향(충북 상당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6대 총선과 충북도지사에서 낙선한 후 내리막을 걸었다. 검찰조사를 수차례 받았다. 결과적으로 무혐의처분을 받았으나, 2003년 조폭연루설로 태권도협회장에서 물러났을 때를 이야기하던 그의 얼굴에 잠깐 분노가 일었다.
“그때 허리가 꺾였어.” 김종필 전 총리와의 일화를 회상할 때는 목소리에 흥이 들어갔다. “내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거든.”
마흔 여덟에 정치를 내려놓고 중국에서 제2의 도전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한국 정치와 경제에 대해 물었다.
- 16대 총선 낙선 이후 정계를 떠난 지도 벌써 15년이 흘렀다.
“30대 후반에 정계에 입문해 40대에 국회의원을 두 번 지냈으니 그 때가 황금기였다. 48살에 정치활동이 끝났다. 보통 사람들은 그 때가 시작할 나이지 않나. (은퇴하기에) 너무 일렀다. 50대에는 10년 가까운 시간을 해외만 돌아다녔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이 마치 30대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다. 모든 게 새롭게 보인다.”
- 지금 한중경제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전문가다.
“중국에 사업하는 한국 사람 중에 나보다 더 전문가가 많다. 나는 오래 머무르면서 공부를 했을 뿐이다. 중국 사람은 나를 볼 때 특이하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은 20대 후반에 유학을 가는데, 교수가 볼 때 나는 거꾸로 가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국회의원 경력까지 있으니 특이하다고도 생각했겠지. 내가 55세에 북경대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으로 43살의 교수가 있었다. ‘왜 유학을 하려고 했나’고 질문하더라. ‘20년마다 수명이 10년씩 늘어난다고 한다. 교수님은 110살까지 살 것이고, 나는100살까지 산다. 난 이제 반환점을 넘었다’고 했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라. 이 말 한마디에 합격된 것 같다.”
- 50대의 나이에 중국으로 유학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황당하다고 여기겠지만, 그 당시 머리가 워낙 복잡해서 역술인을 찾아 점을 봤는데, 점괘가 그렇게 나왔다. ‘지금은 떠나 있어야 한다. 북쪽으로 가라’고 했다. 중국으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딱 짚어 북경으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중국 북경대로 향했다. 중국어로는 한 마디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어학연수도 20대 유학생들은 2학기만 졸업하는 걸 나는 초급 준중급 중급 중고급 고급 5학기를 했다. 역술인이 50대 안풀리던 인생이 60대부터 풀린다고 했다. 진짜 작년 하반기부터 모든 게 잘 풀리고 있다. 인생 2막이 펼쳐지나 싶다.”
- 사업가로서 성공했다는 평가가 있다. 최근 해운대에 대규모 골프장리조트를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
“2008년 중국 북경에 있을 때 올림픽을 봤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가 떠올랐다. 10년 주기로 도시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돌이켜 보니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에 눈길이 갔다. 해운대에서 (한국 생활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산에서는 부산이 어떻게 개발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 해운대에 34만평(112만㎡)의 노는 땅이 있더라.
사겠다고 했더니 ‘이 큰 땅을 서울 사람이 산다니 희한하다’고 했다. 그렇게 1610억원을 주고 샀는데, 지금 이 땅 가치가 3500억원 가까이 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이런 땅 자체가 없다. 올해부터 운이 풀리는 것 같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의 골프장 활성화 발언을 이후에 주가가 많이 올랐다.
(그가 대주주인 씨엔에스자산관리는 주가가 올초 2300원에서 2일 현재 4600원으로 두배가 됐다.) 골프장 중에서 상장한 곳이 많지 않거든. 이게 1조 짜리 사업인데, 잘 되도록 해 봐야지.”
- 두번째 인생을 시작한다고 했다. 향후 10년의 목표가 궁금하다.
"인생 후반기 두 가지 목표가 있다. 개인적인 것과 공식적인 것.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미래재단을 통해서 동북아 금융공동체 우리나라 통일을 비롯해 나아갈 길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여유가 있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제2의 인생을 불사르기 위해 하는 것이 2009년에 부산 해운대 땅을 산 것이다. 종합 레포츠 타운 건설을 시작했다. 이게 이제 절반 왔다. 골프장은 회원 모집 중에 있고, 리조트는 이제 곧 오픈한다. 한반도재단을 운영하는 것은 공식적인 차원이다. 그 외에 보람이 있다. 탈북청소년을 선발해 통일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을 해외 연수도 보내고 있는데, 총 1000명 지원이 목표다. 그런대 탈북민들이 자꾸 줄어드는 추세라 목표를 맞출지는 모르겠다.”
- 그동안 정치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인간 박근혜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인사에 있어서는 두 가지 큰 실수가 눈에 띈다. 하나는 옛날에 데리고 있던 참모를 계속 요직에 두는 것이다. 중국 고사성어에서 ‘등안사벌(登岸捨筏·목적지에 도착하면 타고 온 뗏목을 버려라)’이라는 게 있다. 국가 경영과 정당 경영에 필요한 사람과 역할은 다르다.”
- 토사구팽(兎死狗烹)을 하라는 건가.
“그런 뜻이 아니다. 소대장에서 연대장 진급한 사람이 소대장 때 참모만으로는 지휘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두번째는 박 대통령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이로 인해 권한을 위임하는 것에 인색한 것이다. 국정은 능력있는 사람을 등용해 그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다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것 아닌가. 당정청 회의를 2년 반만에 처음 시행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 박근혜 정부가 정책의 유연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증세없는 복지’라는 공약 자체가 말이 안된다.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지출을 하냐. 돈을 벌어야 차를 사고 집을 산다. 공약이 틀렸다고 보이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참모진의 이야기를 모른 척 따라가면 되는데, 너무 경직돼 스스로 힘에 부쳐서 삐그덕거리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는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다시 인사 문제로 돌아간다.”
- 김종필 전 총리와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다.
“자민련 원내총무를 할 때 5년을 모셨다. 16대 총선에서 낙마한 후 미국 유학을 나갔던 시기 김종필 총재가 조지 W부시 대통령 취임식으로 미국 워싱턴으로 출장을 왔었다. 정치인이 미국에 오면 초청 행사를 가는데, 김 총재가 초청장이 없이 온 거다. 당시 김대중 정부 관계자에게 갖고 있는 초청장 한 장 내놓으라고 해서 김종필 총재에게 드렸다. 바바라 부시 여사가 주최하는 행사였을 것이다. 김 총재가 매우 만족해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기차로 3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동행했다. 뉴욕에서 2박 후 예정에 없던 하와이 여행까지 함께 했다. 최근 김종필 총재가 평생 반려자였던 박영옥 여사를 보내고 난 뒤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고 매우 안타까웠다. 김종필 총재께서는 건강하셔서 후진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