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위안(약 34만원)짜리 브래지어, 200달러(약 22만원)짜리 남성용 팬티…. 중국에서 값비싼 최고급 속옷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2000달러(약 220만원)짜리 뷔스티에(bustier·어깨끈이 없는 여성용 속옷)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속옷 브랜드 라 펄라(La Perla)는 지난해 중국·홍콩·타이완의 매장 14곳 매출이 전년보다 42% 늘었다. 라 펄라는 지난달 상하이에 남성용 매장을 열었다. 200달러짜리 실크 팬티, 3000달러짜리 목욕 가운 등이 주요 품목이다. 영국 속옷 브랜드 아장 프로보카퇴르(Agent Provocateur)도 지난해 중국 매장 4곳의 매출이 25% 상승했다. 조개껍질 장식이 달린 브래지어(1475위안·26만원), 1940위안짜리 레이스 브래지어 등이 인기다.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이 바뀌고 있다. 전에는 브랜드가 겉으로 드러나는 가방이나 금으로 장식한 휴대전화 케이스처럼 부(富)를 과시하기 좋은 제품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가고 있다.
물론 사치성 소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과감하게 돈을 투자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속옷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강력한 반(反)부패 정책을 펴면서 사치하던 일부 고위 공직자들이 낙마하자, 브랜드 로고가 겉으로 드러나거나 값비싸 보이는 제품을 꺼리는 경향이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평가했다.
시 주석 집권 이후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가 부패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링지화 공산당 통일전선부장도 ‘부패 호랑이’로 몰려 낙마했다. 일부 무슬림 여성들이 차도르에 가려 드러내기 어려웠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속옷을 입었다면,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화려한 고급 속옷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란제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200억달러 정도였다. 올해는 18%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 1명당 란제리 매출액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약 79% 상승했다. 남성들도 ‘고급 속옷’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라 펄라가 판매하는 남성용 팬티 중에는 커머번드(턱시도를 입을 때 착용하는 허리띠) 모양 장식이 들어간 4900위안(약 86만원)짜리도 있다. 캘빈클라인도 중국 춘절(春節·음력설)을 전후해 금색과 붉은색을 사용한 남자 팬티를 판매했다.
중국에 고급 란제리나 서양식 속옷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정권을 잡은 마오쩌둥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은 값비싸고 화려한 속옷이 유행하는 것을 경계했다. 마오쩌둥 집권 시기가 중국 속옷 패션의 암흑기였던 셈이다. 이후 나타난 속옷의 고급화는 주로 서구 브랜드들이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중국 브랜드들도 별도의 라인을 만들어 고급화에 동참하고 있다.
해마다 화려한 속옷 패션쇼를 여는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은 지난달 중국 본토에 화장품·액세서리 매장 9곳을 열었다. 아직 속옷을 본격적으로 판매하지는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속옷 매장의 진출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기업인 ‘L 브랜드’는 “중국은 앞으로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