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IS(이슬람국가)가 프리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씨를 살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일, 어머니 이시도 준코(石堂順子)씨는 하염없이 울었다. 어렵게 그녀가 입을 열어 읽은 성명서는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IS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아들이 꿈꾸던 전쟁 없는 평화였다.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슬픔이 증오의 사슬로 이어져선 안 됩니다." 이시도씨는 "내가 흘린 눈물과 아들의 죽음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아프가니스탄, 중동 등 분쟁 지역의 어린이 인권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고토씨의 뜻을 이어 평화를 염원하자는 추모 운동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고토씨의 취재 모습을 담은 사진과 평화를 염원했던 그의 발언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확산되고 있다. 런던에 거점을 둔 프리 저널리스트 지원단체 '로리펙 트러스트'은 "분쟁 지역의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고토 겐지씨가 일본의 자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고토씨와 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셋째 부인으로 유명한 일명 '데비 부인(일본명 네모토 나오코)'은 최근 블로그에 "내가 겐지의 엄마였다면, 아들에게 자결하라고 했을 것"이라는 막말을 했다. 이시도씨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아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일본 정부에 호소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데비 부인은 "이시도씨가 아들이 일본과 요르단에 끼친 폐에 대해서 땅에 엎드려 사죄해야 했다"고 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시도씨가 발표한 성명에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표현이 있었지만, 사죄 표현이 성명서 맨 앞에 나오지 않고 중간에 들어간 것도 트집 잡았다. 극우 정치인 다모가미 도시오는 "고토 겐지가 '자이니치'(재일 조선인)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폈다.
이런 주장은 인질이 되면 동정보다 비난을 하는 일본 특유의 '자기 책임론'에 근거한 것이다. 2004년 이라크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납치된 인질 3명이 풀려나 일본 공항에 도착하자 '세금 도둑'이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위험 지역에 스스로 찾아가 인질이 돼 국가에 폐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정부는 항공료는 물론 버스 요금까지 청구했다. 인질은 물론 가족까지 비난받았다. 당시 프랑스 르몽드지는 "해외에서 자원봉사하다 인질이 된 젊은이를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무책임만 강조하고 비용까지 청구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 책임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본 언론인은 전쟁 지역 취재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자국민 인질을 방치하자는 것은 일본을 중세 국가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을 옹호하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등의 주장도 적지 않다.
일본인들에게 영향력이 높은 저널리스트 이케가미 아키라(池上彰)씨도 아사히(朝日)신문에 "분쟁 지역 현장은 누군가가 취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고토씨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는 베테랑 저널리스트"라고 했다. 가족이 피살됐다는 소식에 사과부터 했던 유카와씨의 아버지나 고토씨의 형과 달리, 고토씨 부인은 남편에 대한 자부심을 말했다. 그녀는 성명을 통해 "분쟁 지역에서 사람들의 고통을 전해온 남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도쿄(東京)신문은 2일 "고토씨의 죽음을 세계의 분쟁과 빈곤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로 삼자"고 했다. 고토씨가 생전에 강의를 자주했던 다마가와세이(玉川聖)학원 고등학교는 홈페이지에 "고토씨가 우리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은 자기가 처한 곳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었다"며 그를 추모했다. 각 서점에는 '다이아몬드보다 평화를 원한다' 등 분쟁 지역 어린이 인권 문제에 관한 고토씨의 저서를 찾는 시민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서점은 고토씨가 남긴 4권의 책을 전시하는 코너도 만들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검증론도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민주당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현 정부의) 대응책에 검증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 삼은 것은 고토씨 등 자국민 두 명이 IS에 억류됐다는 사실을 아베 정부가 작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질이 있는데도 중동을 방문, 공개적으로 테러와의 전쟁 참여를 선언한 것이 IS를 자극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간사장은 "테러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여서도 안 되지만, (굳이) 도발할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사설을 통해 "고토씨 가족이 지난해부터 IS에게서 몸값 지불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베 총리가 중동을 방문했을 때 IS와 싸우는 나라들에 경제 지원을 표명한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