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부터 서울시는 오피스텔 등의 관리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관리비가 지나치게 많다는 민원이 꾸준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우선 민원이 강하게 들어온 10곳을 상대로 파악에 나섰다. 그런데 서울 강서구 A오피스텔을 찾는 순간 공무원들은 깜짝 놀랐다. 사무실을 찾았지만 서류 한 장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6월부터 작년 5월까지 이 오피스텔에는 수십억원이 넘는 관리비가 들어왔는데, 서류는 하나도 없었다. 관리비뿐만 아니었다. 2006년 8월부터 매달 약 300만원씩 적립한 장기수선충당금 2억7000여만원(장기 계획에 따른 주요 시설 수리·교체 비용)도 사라졌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조사도 못 하고 아무런 후속 조치도 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회계 서류 폐기해도 문제 안 돼
A오피스텔은 2004년 준공됐다. 이후 9년간 오피스텔 소유자들의 전체 모임인 관리단 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관리비 징수 및 집행 등 관리단 업무를 볼 관리인도 선임되지 않았다. 대신 준공 당시 시행사가 임의로 정한 시행사의 자(子)회사가 건물을 관리했다. 그러다 9년이 지난 2013년 11월 오피스텔 소유자 10여명이 처음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관리자들이 오피스텔의 장기수선충당금에 손을 댄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작년 1월 관리단 회의를 열고 관리인을 뽑았다. 또 새 관리 회사를 선정해 건물 관리를 맡겼다. 그리고 장기수선충당금이 실제로 어디로 갔는지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회계 서류와 각종 공사·용역 계약서, 회의록 등 관리 업무 관련 자료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장기수선충당금도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존 관리업체가 철수하면서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피스텔 소유자들은 이전 관리 회사를 상대로 수사 기관에 형사 고소·고발을 하거나 민사소송을 하고 싶었지만 증빙 자료가 전혀 없어서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이전 관리 회사는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관련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주택법에 따라 150가구 이상 아파트는 관리비 징수·보관·집행 등에 관한 장부를 매월 작성해 증빙 서류와 함께 5년간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오피스텔 같은 집합 건물은 이 같은 규정이 없다. 곧바로 서류를 폐기하거나 따로 보관해 공개하지 않더라도 전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오피스텔 관리 회사가 관리비 비리를 의심받을 경우 관련 서류를 없애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관리비 인터넷에 공개 안 돼
오피스텔의 경우 관리비를 공개할 의무도 없다. 아파트 관리비는 2009년부터 국토교통부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www.k-apt.go. kr)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매월 47개 항목이 모두 공개되며, 인근에 있는 다른 아파트 관리비와 비교도 가능하다. 하지만 오피스텔 등 집합 건물은 공개와 관련된 규정이 없다. 이렇다 보니 오피스텔 입주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인건비가 책정됐는지, 자신이 내고 있는 관리비가 얼마나 비싼 건지를 알 수가 없다.
A오피스텔의 경우 2004년 '일반관리비(인건비가 대부분임)'는 3.3㎡(1평)당 4200원 정도였다. 세입자들 사이에서 주변 아파트에 비해 관리비가 비싸다는 얘기가 나왔다. 작년 5월 새 관리 회사와 위탁 계약을 맺고 3.3㎡당 일반관리비를 3200원 수준으로 낮췄다. 10년 동안 물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관리비를 1000원씩 내려도 오피스텔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전까지 입주자들이 낸 관리비에 심각한 거품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오피스텔의 한 소유자(47)는 "관리비 내역이 인터넷에 공개만 돼도 오피스텔 관리비는 더 많이 낮출 것"이라고 했다.
◇행정 기관 조사 권한 없어 '구멍'
현행 집합건물법은 행정 기관에 관리비와 관련된 조사·감독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A오피스텔의 경우 일부 소유자들이 작년 11월 비대위를 만든 다음 강서구청과 서울시청을 찾아가 "관리 회사의 비리가 의심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나 구청 모두 "우리는 권한이 없어 조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는 2013년과 2014년 오피스텔 등 집합 건물 실태 조사에 나섰지만 17개 건물 중 6개 건물이 조사를 거부했다. 공무원들은 건물 관리사무소 직원들로부터 "무슨 권한으로 조사를 하느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집합 건물도 행정기관의 조사·감독을 받도록 관련 규정을 손질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법무부는 "집합건물법은 사적 영역을 다루는 민사특별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행정기관 개입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