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라디오 드라마 60년사(史)가 나온다. 한국 성우 60년, 한국성우협회 창립 50년을 맞아 한국성우협회가 지난해 10월부터 발간 준비 중인 ‘라디오 드라마사’(가제)다. 3월쯤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고, 다음 달 영상물도 제작할 예정이다. 이번 집필을 총괄하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당대의 라디오 드라마와 그 역사를 함께한 성우를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의 어머니는 1세대 성우 고은정(79)씨다.

라디오와 성우, 역사로 되짚다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로 평가받는 '노차부(老車夫·1933)', 최초의 라디오 연속극 '똘똘이의 모험'(1947) 등이 있었지만 곧 전쟁이 닥쳤다. 본격적인 라디오 드라마는 1954년 KBS의 성우 1기 모집과 함께 시작됐다. 황금기를 열어젖힌 최초의 작품은 KBS '인생역마차'(1954)다. 청취자의 사연을 성우가 1인칭 목소리 연기로 내보내고, 다음 회에 문인·교수·법조인 등이 해답을 제시하는 형태였다. 1957년엔 라디오 전체 청취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이듬해 폐지된다. "일상의 어두운 측면만 과장·반복돼 사회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TBC라디오 ‘소설극장―미쓰양의 모험’(1977)을 녹음 중인 성우 남궁윤, 안정훈, 송도순, 노민, 황원, 온영삼.(왼쪽부터).

이어 최초의 멜로 연속극 KBS ‘청실홍실’(1956) 등이 인기를 이었다. 인기만큼 질타도 상당했는데 “내용이 천편일률적이고,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도시 문화만 보여준다”는 비판이었다. 그러자 ‘가족’이 등장했다. 아버지의 실직 이후에도 서로 위로하며 화목을 일궈낸다는 KBS ‘로맨스 빠빠’(1958) 같은 이른바 ‘홈 드라마’의 탄생이었다. ◇라디오 황금기, 그리고 전환기 1960~7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를 맞아 추녀의 험난한 삶을 다룬 ‘여성이 가장 아름다울 때’(1961), 아내의 방황을 다룬 ‘사랑이 무서워’(1964), 정년퇴직한 노인들이 주인공인 ‘동갑네’(1964) 등 이색 라디오 드라마도 줄을 이었다. 납치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극 ‘명동 꽃집의 비밀’(1964), 살인사건을 다룬 ‘파문’(1964) 등 장르도 다양해졌다. 다큐멘터리 드라마도 등장해 1965년부터 1983년까지 방송된 MBC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메가 히트작도 나왔다. 동시에 전환기였다. 영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순재·양택조·나문희·김영옥 등 실력파 성우들이 TV로 옮겨갔다. 1980년 컬러TV 도입은 결정타였다. KBS·TBC 합병 등과 맞물리며 인력 차출도 가속화됐다. 배우 김영옥은 “방송 인력 확충을 위해 목소리 훈련이 돼 있고 무대 감각이 있는 성우들이 많이 스카우트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리고 성우의 미래 라디오 드라마는 곧 성우의 역사. 라디오의 침체는 전속 성우 제도마저 위축시켰다. 현재 국내 방송사 중 전속 성우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KBS, EBS, 투니버스, 대교, 대원방송까지 총 5곳뿐. 1년에 20명 정도밖에 뽑지 않는다. 라디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4월 MBC가 ‘고전열전’을 폐지해, KBS만 그 명맥을 잇고 있는 형국이다. 이근욱 한국성우협회장은 “성우들이 자괴감 대신 대체 불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