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내 한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A씨(32)는 ‘인턴’만 6년째다. 들어올 때는 의원을 보좌하고 국가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보람에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비서관이나 보좌관이 돼 공무원 신분으로 일하면 공무원 연금도 받을 수 있는 기대가 컸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비서관이 되기 위한 면접에서 줄줄이 낙방해 해마다 의원실을 옮겨 다니며 새로 계약을 맺고 있다. 한 때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고 나간 적도 있지만 취직이 쉽지 않았다. 2009년 처음 국회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꿈이 점점 작아져만 간다.

국회 의원회관 전경. 의원실에서 일하는 인턴들은 이곳에서 근무한다.

인턴 근무를 하다 정규 비서관이 된 B씨(38)는 드물게 꿈을 이룬 경우다. 그는 일반 기업에 다니다 2013년 초에 뒤늦게 국회에 들어왔다. 2년 가까이 인턴으로 지내다 얼마 전에 7급 비서관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갈 때마다 부인과 곤히 자고 있는 아기 얼굴을 볼 때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해진 느낌이라고 했다.

국회 인턴들은 업무능력을 인정받더라도 기존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그만 두면서 의원실에 결원(缺員)이 생기기 전까지는 정식으로 채용되기 어렵다. 비서관이 되기 위해 기약없는 기다림을 해야 한다. 작년 초 한 인턴은 다른 의원실에서 비서관 채용 공고 난 것을 보고 지원하려 했지만, 같은 의원실에 있던 비서관이 만류했다. “섭섭해. 6월 지방선거 때 우리 방 ○○○ 보좌관이 의원실 관두고 출마한다니까 다른 의원실로 가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봐.” 하지만 관둔다던 보좌관이 출마하지 않으면서 결원은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그 인턴은 그해 6월 다른 의원실 비서관에 응모할 기회도 놓쳤고, 인턴 신분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인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을 보좌하는 '국회 인턴'은 대학 졸업생에게 괜찮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로 통한다.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국회가 2003년 인턴 제도를 본격 도입한 뒤 의원실마다 2명의 인턴을 둘 수 있게 됐다. 인턴은 의원실 보좌관이 되고 싶은 사람이 거치는 코스이기도 하다. 현재 국회 인턴은 모두 525명(13일 기준).

비록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지만 지난해 말 미스코리아 출신이 한 야당 의원실에 지원해 국회 직원들을 술렁이게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처우를 보면 대표적인 ‘미생(未生)’ 일자리 중 하나다.

일단 급여가 적다. ‘국회의원 밑에서 일하고, 정책 결정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월급은 120만원이다. 4대 보험료과 세금을 제외하면 109만원 수준이다. 인턴 급여는 2008년 월 11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오른 후 계속 동결됐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인턴 급여를 15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지만, 예산결산특별위 본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 처우가 이런데도 의원실의 다른 보좌진과 마찬가지로 야근이 잦고 국정감사 등 바쁜 시기에는 아예 퇴근을 못하기도 한다.

계약기간도 짧다. 국회 의원실 인턴은 계약기간이 11개월이다. 고용 기간이 12개월을 넘으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계약 연장도 쉽지 않다. 국회 인턴이 ‘공무원’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회가 그 내부에 미생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작년 9월 17일 오후 인천시 송도 국제도시 인근에서 배우 송일국씨가 세 쌍둥이 아들과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취직난이 심해지면서 이런 인턴 자리도 들어가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의원실마다 ‘입법보조원’을 2명까지 쓸 수 있는데, 급여가 전혀 없거나 의원실에서 교통비 정도 챙겨주는 수준이다. 이 입법보조원도 업무 능력이 뛰어나면 인턴을 거쳐 국회의원 보좌진이 될 수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한 의원실의 비서관은 “입법보조원 중에서는 인턴이라도 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삼둥이 아빠’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 송일국씨의 매니저 월급이 국가 세비로 지출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국회 인턴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송씨의 어머니인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의 인턴이 송씨의 매니저를 겸직했다는 2009년 KBS ‘시사기획 쌈’의 방송 내용이 다시 인터넷상에서 퍼진 것이다.

논란에 대해 송씨의 배우자인 정승연 판사는 본인의 SNS에 “문제되는 매니저는 처음부터 어머님의 인턴이었다”며 “공무원이면 겸직 금지가 문제가 되지만, 국회에 문의를 해보니 이 친구는 정식 보좌관이 아니라 인턴이었다. 공무원이 아니어서 겸직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이 글은 임윤선 변호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전하면서 알려졌다. 국회 인턴이란 자리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매니저를 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도 “국회 인턴의 지위는 말 그대로 ‘인턴’이고 비(非)공무원”이라며 “공무원이 아니어서 겸직이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