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정동영 전 고문은 MBC 기자 출신으로 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MBC 차장이었던 그는 밤12시 뉴스 앵커를 맡고 있었으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중계 방송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상태였다.
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당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천정배, 신기남 의원과 함께 당내 정풍 운동을 주도하며 동교동계 인사들의 2선 후퇴를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천신정'으로 불리며 신세대 정치인으로 주목 받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끌었다. 2004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작'했던 노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그해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됐고 그는 당 의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반노무현 노선을 선택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해체와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으로 야권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대선 후보로 나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맞붙었지만 26%의 저조한 득표율 속에 패배했다. 18대 총선을 통해 정치적 재기를 노리며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에게 다시 패하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체류 중 전주에서 보궐 선거가 치러지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19대 총선에서는 야권의 불모지인 서울 강남에 출마하는 모험을 시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이후 새정치연합 고문으로 있으면서 원외에서 당에 영향을 미쳐왔다. 작년말에는 정대철 고문과 함께 '구당구국' 모임을 이끌면서 당내 친노 진영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기도 했다.
입력 2015.01.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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