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 배우·경성대 교수

지난여름 대하드라마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드라마 '정도전'에서 나는 정도전 역을 맡았다. 극 중 정도전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맹자였고, 가장 좋아하는 말은 맹자의 '불위야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였다. 이 말은 그 이후 나의 실제 일상에서도 어떤 난관에 부딪히거나 열정이 현실 앞에 작아질 때마다 되뇌는 말이 됐다.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와 비슷한 이 맹자의 말이 내 가슴에 남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전하는 사람의 의지와 목적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반성케 하고 도전의식을 일깨우는 말인 것이다. 나폴레옹의 말을 독감에 걸린 사람을 위한 아주 센 주사로 비유한다면 맹자의 말은 가루약 같다고 하겠다. 주사처럼 한방으로 감기 바이러스를 물리치기보다, 서서히 몸속에 반응해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바이러스와 싸우는 약인 셈이다.

요즘은 안 되는 것은 빨리 포기하고, 꿈도 당장 이룰 수 있는 것만 따라가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몇 년 전 지방에 갔을 때 대여섯 살 아이가 사인을 해달라고 왔다. 아마도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모가 시킨 듯했다. 혹시 이 아이가 커서 날 기억하고 이 사인을 보관할 수도 있으니 뭔가 의미 있는 말을 써주고 싶어 "네 꿈이 뭐니?"라고 물었더니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개개인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 물론 이것은 맹자도 정도전도 꿈꿨던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조차 과정도 목표도 없이 오직 결과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른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한 단면을 그 아이에게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최소한 청소년기까지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키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맹자의 말을 가슴에 새긴 정도전이 고려 말 권문세가의 부패로 인한 난세를 척결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시켰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