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산 중구의 명소 국제시장 영화 개봉…축'. 22일 오후 3시쯤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이 시장 옆 도로엔 기다란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현수막엔 영화 개봉을 기념한 할인행사를 한다는 안내도 곁들여 있었습니다.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파란만장, 우여곡절의 우리 현대사 속에서 오직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국제시장'은 지난 17일 개봉 이후 지난 22일 현재까지 176만여명이 관람했다고 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등과 비슷한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답니다. 개봉일인 지난 17일 '국제시장'을 본 서병수 부산시장은 "내가 참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계속 나오더라. 너무 익숙한 장면들이 많았고 그게 마음을 찡하게 하는 것 같았다"고 관람 감상을 얘기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분들의 심정도 비슷했을 겁니다. 그런 영화의 소재가 된 국제시장을 가봤습니다. '국제시장'의 무엇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까 궁금했습니다.

도시철도(지하철) 1호선을 타고 자갈치역에 내려 3번 출구로 나와 10분가량 걸어 올라가면 국제시장에 이릅니다. 출구서 나와 10m쯤 가다 왼쪽으로 접어들어 '왕자극장' 자리인 아카데미빌딩을 끼고 오른쪽으로 꺾어 100여m쯤 가면 BIFF 광장 초입인 '메가박스 부산극장' 앞 찻길이 나옵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이 부근엔 부산의 대표적 개봉관이었던 국도극장, 대영극장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거기서 좌회전해 도로 오른편으로 200여m를 올라가면 창선상가를 지나 국제시장에 닿습니다.

23일 오후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실제 배경이된 부산 중구 국제시장에 시민들이 북적이고 있다. 김종호 기자 zxcgood@chosun.com

대광사, 만복도기, 천야이불…. 평일 낮시간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영화 '국제시장' 개봉 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고 '한번 가 보자'는 사람들이 생긴 거지요. 김용운(67) 국제시장 번영회장은 "토ㆍ일요일인 지난 20~21일엔 시장 통로와 시장을 끼고 있는 지하도 옆 거리가 꽉 찰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며 "그래서 '꽃분이네'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말했다.

실제 영화 속 '꽃분이네' 가게가 있는 B동 3공구 입구 통로 위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 촬영지 꽃분이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영화에선 미제 등 외국 물품을 파는 수입품 가게지만 실제 지금은 양말과 스카프 등 잡화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양말 1000원' '최고급 가죽 벨트 10,000원', '삶아 쓰는 고무장갑 3장 5000원' 등의 손으로 쓴 안내문이 붙어 있고요. 상호도 '영신'으로 달랐습니다. 영신상회 신미란(37)씨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일부러 찾아와 '여기가 꽃분이네네'라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물건을 하나 더 사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국제시장(國際市場)'은 부산 중구 신창동 1~4가(새 주소 국제시장 1,2길, 중구로 24번길)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입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문을 엽니다.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일요일은 쉽니다. 1945년 광복이 된 후 시장이 형성됐답니다. 국제시장은 당시 부산의 가장 번화한 도심인 남포동, 광복동, 중앙동 등에 인접해 있습니다.

23일 오후 국제시장.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흥미롭다. 김종호 기자 zxcgood@chosun.com

상인들이 말한 바로는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통제 물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일본 등지서 귀환동포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귀환동포들이 가져온 물품, 전시통제 물자 등이 거래될 장소가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국제시장 자리는 양지바르고 평지에 있는 드넓은 빈터였답니다. 그래서 이곳에 자연발생적인 장터, 장마당이 섰던 겁니다. 주로 노점상, 좌판, 행상이었던 셈이지요.

이때쯤 명칭은 '돗대기시장' 혹은 '돗떼기시장'이었답니다. 수많은 행상 등이 몰려 시장의 규모가 크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있는 데로 싹 쓸어 모아 물건을 흥정하는 도거리 시장이거나, 도거리로 떼어 흥정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장이 형성되자 1948년 건물을 지어 지금과 비슷한 꼴을 갖추기 시작했답니다. 당시는 단층 짜리 목조 건물이었답니다. 이 즈음 시장 이름은 '자유시장'이었다고 하네요.

이어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시장 규모가 더욱 커졌답니다. 미군과 유엔군 군용 물자와 부산항을 통해 밀수입된 물자들이 유통되었던 거지요. 국제시장은 부산항과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제(國際)'란 이름이 붙었답니다. '국제시장'이 된 거지요. '외국 물건 등 없는 게 없는 시장'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네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엔 정식 통관된 물품보다 밀수입된 물품의 종류와 양이 더 많았다는 것이 이 시장의 오래된 상인들의 얘기입니다.

지금 말로 하면 국내 최대의 '글로벌 시장'이었던 셈입니다. 대화재 등을 거치고 시장 규모가 커지자 1953년 지금 시장과 같은 2층짜리 건물 12개동(6개 공구)이 지어졌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국제시장에 온 건 이즈음 일 겁니다. 국제시장은 유행가요인 '굳세어라 금순아'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시장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래 규모가 큰 시장이기도 했습니다.

국제시장의 점포 수는 이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답니다. 2평반(8.25㎡) 기준 1498개 점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10~30개 점포를 털어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아 업체수는 600~700여개 정도 된답니다. 6개 공구로 구분돼 있는데 1공구는 가방ㆍ문구ㆍ공예품, 2공구는 주방기구ㆍ철기ㆍ안경점, 3공구는 침구류ㆍ양품점, 4공구는 포목ㆍ주단ㆍ양단ㆍ주방기구, 5ㆍ6공구는 가전제품ㆍ기계공구ㆍ포목점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종업원 수는 약 1,200∼1,300명에 이르고요.

23일 오후 국제시장. 여전히 북적이지만 영화덕에 관심이 더해지고 있다. 김종호 기자 zxcgood@chosun.com

이 영화에 고(故) 정주영 회장이 등장하는 것처럼 LG 등 대기업들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지난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분들의 자제 중에 관료, 판ㆍ검사, 교수, 의사 등이 된 경우는 수두룩 합니다. 부산의 대표적 향토기업 중 하나인 인디안 '세정', 요즘 뜨고 있는 '베이직 하우스' 등도 국제시장에서 출발했답니다. 국제시장이 해방, 6·25전쟁,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 등 우리 현대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거지요. 그러면서 국제시장은 그 현재, 현장을 뜨겁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터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보통 사람' '보통 아버지'들의 삶과 열정, 애환이 스며들어 있는 장소인지도 모릅니다. 거창하진 않은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이지만 어떤 웅변, 열변보다 더 감동적이고 더 가슴 벅찬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 이야기가 온 국민의 마음을 웃기고 울리고 있습니다.